별별다방으로 오세요! - 길을 막고 지나가는 사람에게라도 물어보고 싶은 당신의 고민을 들어드립니다!

모녀의 거울 (8)
850
mrs****
2020-06-13
조회 14400
추천 6

 

  불행한 엄마는 거울을 보고 묻습니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행복하니?”

  그러면 아첨쟁이 거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딸이 가장 행복할 겁니다.”

  엄마는 그 대답에 흡족해하지만, 그 순간 어린 딸은 자기만의 거울에게 묻고 있습니다.

 “거울아 거울아, 우리 엄마는 지금 어디에 있니?”

  

 모녀의 거울  

 

작년 한 해는 그러고보니 엄마한테 꽤 자주 갔었습니다.

3월부터 구순의 외할머니가 엄마한테 와 계셨거든요.

외할머니는 내게 특별한 분입니다.

일하는 엄마 대신 우리 남매를 키워주신 분이니까요.

어린 시절, 비가 쏟아지는 하교길 우산 들고 학교로 찾아오는 사람은 엄마가 아닌 외할머니였습니다.

서울에서 자취하던 대학생 때도 김치며 밑반찬에, 보약까지 바리바리 싸서 자주 올라오셨고,

어린 손녀 혼자 두고 내려가기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며 며칠씩 묵어가곤 하셨죠.

그러던 분이 지금은 치매가 심해져 저를 알아보지 못하십니다.

어제 오늘 유난히 저를 찾으신다기에 만사 젖히고 달려가보면,

눈만 꿈벅꿈벅하시며 저를 보고 애기엄마라고 부르시는 겁니다.

할머니 기억 속의 손녀는 여전히 청바지에 긴머리 질끈 묶고 다니던 여대생인가 봅니다.

 

그나마 코로나 이후로는 겁이 나서 엄마와 할머니에게 통 못 가보고 있습니다.

대신 전화통화는 자주 합니다.

오늘도 엄마가 전화를 걸어와 대뜸, 할머니가 너 찾으신다! 하고는 할머니를 바꿔주더군요.

저는 얼른 스무 살 때의 목소리를 내어, 할머니~ 혜진이에요~. 했습니다.

할머니는 제 목소리를 알아듣고, 오냐, 우리 강아지. 공부 잘 하고 있지? 하십니다.

걱정 마시라고, 열심히 하고 있다고 대답하려는데 문득 목이 메는 건 왜일까요?

그 틈에 곁에 있던 엄마가 끼어듭니다.

아유, 엄마. 걱정 붙들어매. 얜 어딜 가도 공부는 열심히 하는 애야.

약지를 못한 헛똑똑이라 그렇지...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약지를 못한 헛똑똑이.

그렇게 듣기 싫어하던 엄마의 그 말이 이젠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여지네요.

맞는 말이거든요.

그리고 그 말을 하는 엄마의 심정도 이제는 헤아리게 됩니다.

기대를 걸었던 자식이 내 보기엔 영 아닌 길로, 그것도 제 발로 걸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속이 오죽했을까요?


엄마가 뭐 그리 거창한 기대를 걸었던 것도 아닙니다.

확실한 내 일을 가진 여자가 되라는 것.

남자에 기대지 않고, 남자에게 방해도 받지 않으며 내 능력으로 신나게 일하며 사는 사람이 되라는 것.

그래서 내 인생을 내 것으로 누리며 살라는 것...


타고난 공부벌레인 줄만 알았던 딸이 하루아침에 하던 공부 그만두고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믿으려 들지 않았지요.

딸의 남자친구를 만나보기도 전에 반대부터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건, 아직 공부해야 할 딸을 제 식구로 데려가겠다는 사람은 마땅치 않았던 겁니다.

그때 엄마는 이런 말로 저를 설득했습니다.

사랑도 청춘도 사람 마음도 영원한 것은 없어.

믿을 건 내 능력뿐이야. 지금은 한창 배울 땐데, 넌 왜 인생을 거꾸로 가려고 하니.

내가 그렇게 놔둘 것 같아?


하지만 엄마는 결국 아무것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저는 스물 네 살 봄에 정말로 결혼식을 올렸고, 적당한 회사에 들어가 별 욕심 없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도 한동안 엄마는 다시 무슨 공부든 해보라고 권하곤 했지만,

저는 그 말을 틀어막듯 아이 둘을 연달아 낳았지요.

그 애들을 내 손으로 키우느라 사람꼴이 아닌 모습일 때,

엄마는 나를 헛똑똑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네 친구 누구는 대학 다시 들어가서 치과의사가 되었다는데,

공부 못하던 누구는 애기를 친정에 맡기고 공부해서 공무원이 되었다는데,

유학 갔던 집안의 누구누구는 기어이 박사 따서 들어와 마흔 넘어서도 시집만 잘 가던데...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었을 텐데, 그때는 그런 말을 들을수록 내 마음은 엄마로부터 더욱 멀어졌던 것 같습니다.

흔히들 하는 말처럼, 나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엄마는 저를 헛똑똑이라 부르지만, 저는 엄마를 똑똑한 바보라고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학교를 남달리 오래 다닌 것도 아니면서, 엄마는 참 똑똑하고 유능했습니다.

적어도 아버지보다는 엄마가 더 유능했죠.

아버지는 감상적이고 빈틈이 많은 분이었지만 엄마는 그와 반대였습니다.

무슨 일을 맡아도 엄마가 더 칼 같이 정확히 해냈고, 어떤 문제가 생겨도 엄마가 더 대담하게 잘 처리했습니다.

무능함은 유능함을 만나면 활짝 꽃이 핍니다.

아버지는 점점 더 못난 사람이 되어갔지요.

아버지의 허술함과 불성실함에는 그럴 듯한 핑계가 있었습니다.

아내가 너무 잘 나고 드세서.


아버지의 방황에 궁여지책으로 시작한 엄마의 사업은 날이 갈수록 번창했습니다.

엄마는 늘 바빴고, 우리 남매는 외할머니 손에 컸습니다.

엄마와 거리가 생기니, 조숙한 사춘기 시절엔 엄마의 삶을 내 나름 객관화하게 되더군요.

내 눈에는, 엄마가 별로 행복해보이지 않았습니다.

능력 있고 당당한 엄마였지만 외로워보였습니다.

우리에게 엄마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일 뿐, 살을 비비며 체온을 나눈 기억은 없는 존재였습니다.

아버지 역시 엄마를 그렇게만 대하는 듯 했습니다.

나중엔 엄마 탓을 하고, 미워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다 두 분은 결국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죠.

이미 성인이었던 나는 그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였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그 대목에서 그만 일그러진 교훈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처럼 유능한 바보로 살지 않겠다는.

나는 곁의 사람을 내 사람으로 온전히 차지하고야 말겠다는...

 

딸의 인생은 엄마의 인생을 비추는 거울인가 봅니다.

똑바로 비추면 좋은데, 왜곡하고 뒤집어서 비추는 거울일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 거울을 깨고, 나를 비추는 내 거울을 갖는 것이 성장의 끝이라면,

저는 마흔이 되어서야 다 자랐습니다.


엄마와 나는 애초에 다른 여자들이었던 겁니다.

엄마의 불행은 엄마의 유능함이 아닌, 인간적인 결점에서 비롯된 것이고,

불운하게도 아버지라는 결점 투성이의 짝을 만나 더욱 활성화된 것임을 이제는 압니다.

그마저도 엄마가 자기 인생의 몫으로 받아들이고 극복하면 더 이상 불행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압니다.


그러고보니 올해 대학 입학한 내 딸의 거울에 제가 어떻게 비칠지 두렵습니다.

인생을 낭비한 엄마, 초라하고 소심한 엄마로 비칠까요?

그게 전부는 아닌데...

 

오늘 전화를 끊기 전 엄마한테 들은 마지막 말이 여태 잊히지 않습니다.

 

희한하다 혜진아. 울엄마는 왜 나보다 널 더 좋아할까?”

 

그 말에 저도 모르게 이렇게 대답했죠.

 

나도 궁금해. 내 딸은 또 왜 나보다 엄마를 더 좋아할까?”

 

우리는 오랜만에 함께 웃었습니다. 거울이 깨지는 소리를 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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