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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마음의 0순위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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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s****
2020-01-04
조회 21783
추천 6

 

여러분 마음의 1순위는 누구입니까?

모든 걸 다 주고도, 더 주지 못해 미안해지는 한 사람.

그러나 1순위는 세월 따라 바뀝니다.

영원한 건 0순위입니다.

마지막에 내가 돌아갈 곳, 언제라도 나를 받아줄 한 사람.

여러분 마음의 0순위를 오늘은 따뜻이 안아주세요. 고맙다고...

  

  

이거 어때? 우리 신년 계획으로.”

빨간 동그라미를 쳐 놓은 팜플렛 한 장을 아내 앞에 쓱 내밀며 내가 말을 꺼냈습니다.

 

뭔데? 문화센터 강좌? 설마... 부부 커플 댄스를 배워보자고?”

 

좋잖아. 운동도 되고, 달달한 스킨쉽도 되살리고.”

 

장난처럼 말했지만 내 딴에는 전부터 별러오던 계획입니다.

인생 2막을 대비해, 부부간의 공동 취미 개발하기! 가능하면 몸을 움직이는 종목으로!

더구나 며칠 전 아내는 이러다 금새 오십 되고, 육십 되나보다고 우는 소리 하지 않았던가요?

그러나 내 달달한 제안을 아내는 전혀 달달하지 않은 표정으로 딱 잘라 거절합니다.

 

안 돼. 토요일 그 시간은 준이 간식 먹여서 학원 태워다 줘야 돼.”

 

편의점에서 아무거나 사 먹고 걸어가라고 해. 엄마 아빠는 춤추러 간다고 하고.”

 

아내는 대답 대신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봅니다.

내가 당신하고 춤추자고 아들 편의점 컵라면 먹여서 엄동설한에 걸려 보낼 것 같아?

 

그래. 알았다. 내가 또 깜박했다. 당신한테 나는 영원한 2순위라는 걸.”

 

호쾌하게 빼들었던 칼, 호박도 못 찔러보고 도로 집어넣으려니 무참했습니다.

그리고 한편 서운했죠.

우리 집에서 2순위는 아무 소용 없습니다.

1순위가 워낙 절대적이거든요.

아내의 뇌 속에 서랍이 열 개쯤 있다면 아홉 개는 아들의 것입니다.

아들의 식사, 아들의 옷, 아들의 시험점수, 아들의 키 성장, 아들의 게임, 아들의 여드름 관리...

구석에 하나 있는 남편의 서랍은 몇 년째 열어보지 않아 뭐가 들었는지도 모를 겁니다.

아들을 질투하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어이가 없습니다.

그저께만 해도, 아내는 아들의 거친 말대꾸에 상처받고 내 앞에서 눈물을 훔쳤지요.

즉각 내가 나서서 아들을 호통쳤습니다.

너 엄마 속상하게 하면 나한테 맞는다고요.

그때는 제 등 뒤에 딱 붙어 서 있더니 12시간도 못 되어, 아내는 아들바라기 모드로 돌아가고,

저는 다시 찬밥신세네요.

아들놈은 더욱 기고만장해지고요.

 

그러고보니 문득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스무 살 대학생이던 아내의 마음 속 서랍 백 개를 몽땅 차지하고 있던 한 사람.

영우선배라던, 그 사람은 지금 어디서 뭐하고 있을까요?

그 곱상한 얼굴에 물결치던 곱슬머리와, 기타 치던 긴 손가락으로

쉰 살이 다 된 지금도 여전히 뭇 여자들을 울리고 있을까요?

 

그 시절, 제 아내는 그 선배 때문에 자주 웃고 울었습니다.

웃을 때도, 울 때도, 친구인 저는 이야기를 들어줘야 했죠.

내가 듣기엔 별 일도 아니건만, 아내는 눈에서 하트를 뿜으며 탄성을 지르거나,

멍해져서 젖은 한숨을 쉬곤 했습니다.

듣다 못해 한 번은 호기롭게 외쳐보기도 했죠.

아우, 그 인간, 내가 언제 한번 가서 혼쭐을 내줄게.

그러나 그 외침을 실행할 기회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루도 못 지나 아내가 다시 소녀팬의 눈빛으로 돌아와 선배를 향해 하트를 발사하곤 했으니까요.

말하자면 저는 그 시절 아내의 마음 속 서랍을 단 한 개도 차지하지 못한,

만년 2순위에 찬밥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2순위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습니다.

저는 그 두 사람이 끝내 잘 될 거라고는 단 한 순간도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아내의 진짜 남친은 나라고 생각했고, 언젠가는 그녀가 내 품으로 달려올 거라 믿었습니다.

지금은 뭘 몰라서 저런 이기적인 남자에게 목을 매지만, 나중에 남자의 진짜 사랑이 뭔지 알면,

나를 다시 보게 될 거라고요.

당시 스물 한 살이던 내가 생각하던 진짜 남자의 사랑이란 온갖 구박과 푸대접을 참고 견디며,

그녀를 끝까지 지키는 것이었죠.

과연 시간이 흐르자 옥석이 저절로 가려졌습니다.

선배라는 사람은 은행 다닌다는 어떤 아가씨를 만난 이후로 돌변하여

지금껏 어장관리하던 여학생들을 한꺼번에 정리해버렸고,

그 바람에 마음 둘 곳을 잃은 아내는 저녁마다 제 어깨를 눈물로 적시곤 했습니다.

그때 저는 그녀를 보듬으며 말했죠.

거 봐. 네 곁에 끝까지 남을 사람은 나뿐이라니까?

나는 세상을 다 가진 듯 가슴 벅찼습니다.

그간의 마음고생이 꿈만 같았죠.

하긴 그 어린 나이에 제가 어찌 알았겠습니까?

내 인생 최고의 연적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푸대접을 견디며 그녀를 지켜야 하는 남자의 시간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도 안 했다는 사실을...

 

아들이 태어나자 아내는 온 마음을 그 녀석에게 빼앗겼습니다.

자나 깨나 아들 생각이죠.

남편이란 아들을 잘 키우기 위해 필요한 동지쯤으로 생각하나 봅니다.

갈급히 저를 찾는 건, 아들 때문에 무척 속상할 때와, 아들 때문에 목돈이 들어갈 때이지요.

저는 군말없이 그 역할을 하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속으로 생각하지요.

마지막엔 아내 곁에 나밖에 없을 거라고요.

아들이란 곧 다른 여자와 눈 맞아 떠나갈 존재잖습니까?

그토록 사랑해주던 어머니를 가차없이 정리해버리겠지요.

어찌 아느냐고요? 제가 그랬거든요.

아내를 알고, 세상의 중심이던 어머니를 하루아침에 변방으로 밀어냈습니다.

언젠가는 아내도 아들의 세상에서 밀려날 겁니다.

그때, 눈물 흘리며 분해하는 못난 어머니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누가 마지막까지 남을 사람인지를 살펴야지요.

 

어느새 소파에서 설핏 잠이 들었던가요?

노곤한 내 몸을 더듬는 손길에 퍼뜩 눈을 떴습니다

 아니, 당신 갑자기 왜 이래?

 

가만 있어봐. 다리 길이 좀 재보게. 준이 바지 하나 사려는데, 다리 길이는 벌써 당신하고 같거든.”

 

, 정말 너무하네요. 나도 사람이고 남자인데...

갑자기 술 생각이 간절해지며, 마치 순정을 바치던 옛 애인처럼 울엄마가 보고싶습니다.

 

, 가엾은 어머니. 불효자는 웁니다.”

 

?”

 

당신도 머잖았어. 아들한테 배신당하고 눈물 흘릴 날이.”

 

그러나 아내는 줄자를 촤르르 감으며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네요.

 

그땐 또 당신 붙잡고 눈물 짜지 뭐. 나한텐 당신이 영원한 0순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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