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다방으로 오세요! - 길을 막고 지나가는 사람에게라도 물어보고 싶은 당신의 고민을 들어드립니다!

엄마라는 사람들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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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s****
2019-12-21
조회 17718
추천 12

 

두려움이 곧 용기이고, 미안함이 곧 고마움임을 어디서 알게 될까요?

주는 것이 받는 것이고, 센 것이 약한 것이고,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눈물 어린 지혜를 누가 가르칠까요?

자식이 가르치나 봅니다.

엄마라는 이름이 알게 하나 봅니다.

  

엄마라는 사람들은...


  

, , 센 척한다!

나는 괜찮으니, 어서 집에 가서 애들을 챙겨주라고 했다가 남편에게서 혀 차는 소릴 듣고 말았습니다.

하긴 내일 아침 수술 예정인 아내를 병실에 남겨 두고 쉽게 발길이 떨어지진 않겠지요.

멋쩍은 웃음이 피식 났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저는 센 척’ ‘쿨한 척을 좀 하는 여자입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남편 앞에서 센 척을 못하겠습니다. 이번에, 다 들통났거든요. 센 척하는 겁쟁이에 불과하다는 것이 말입니다.

 

몇 주 전 어느 날, 세수를 하다가 발견한 턱 밑의 불룩한 혹 때문에 단골 병원을 찾았더랍니다.

살다가 이런 일은 또 처음이라며 쿨하게 웃는데, 의사선생님 표정은 굳어져 갔습니다.

당장 큰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네요.

그 뿐이 아닙니다. 바로 전화기를 들어 가까운 종합 병원에 문의해 보더니,

제겐 묻지도 않고, 당장 월요일 오전으로 예약까지 잡아 주시는 겁니다.

저는 아직 웃는 얼굴인 채로, 물어보았습니다.

암이나, 뭐 그런 건가요?

선생님은 아니라고 하지 않으시더군요.

정확한 건 검사를 해봐야죠. 월요일에 꼭 가세요.”

 

그 날부터 결과가 날 때까지 며칠 동안, 저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넷에서 나와 비슷한 혹을 가진 사람들의 사진과 경험담들을 샅샅이 뒤졌지요.

그런데 보면 볼수록 예감이 안 좋았습니다.

영락없는 악성 종양이었지요.

남편은 이제 그만 들여다보고 마음을 편히 가지라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센 척쿨병도 온 데 간 데 없고, 저는 혈안이 되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뿐인가요? 아이들을 보면 눈물이 나고, 남편을 보면 자꾸 눈앞이 아득해지더군요.

검사 전야인 일요일 밤에는 남편과 나란히 누워 이런 닭살 돋는 말까지 했답니다.

당신 만나서 난 그래도 참 행복했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행히 중병은 아니었습니다.

작은 돌 하나가 침샘관을 막아, 침샘이 부었을 뿐이라더군요.

증상이 전형적이지 않아 진단이 어려웠다나요?

치료방법은 간단했습니다.

돌을 제거하고 침샘관을 넓히는 성형수술!

다행스런 소식을 듣고도 아직 얼떨떨해하는 저를 보고 남편이 툭 치며 농담을 하더군요.

성형하고 이뻐져도 맘 변하지마.

 

하여간 그런 연유로, 저는 지금 병실에 누워 있는 거랍니다.

오늘 낮에 입원해서 내일 있을 수술을 준비하고 있지요.

간단한 수술이라니 걱정은 안 합니다.

다만 저희들끼리 남겨둔 애들이 걱정이지요.

둘째 녀석은 엄마를 찾지나 않는지, 중학생 큰애는 기말고사 공부를 잘 하고 있는지.

그래서 아까부터 남편을 돌려보내려는 건데, 이 남자는 내가 잠들면 가겠다고 하는 겁니다.


간단한 수술을 앞두고, 그야말로 신경 쓰이는 일이 왜 이리 많나요?

어머님께도 전화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내일 수술 잘 받겠다고, 그리고 병원 오실 생각일랑 절대 마시라고 한번 더 말씀드려야지요.

 

며느리가 수술을 받는데 시어미가 어째 안 가누.”

 

아녜요. 어머니. 내일 날이 추워진대요. 다리도 불편하신데 집에 계셔요.

  저는 말짱해요. 이건 수술도 아녜요. 성형 시술이에요.”

 

그래도 전신마취 한다는데 난 지팡이 짚고라도 가볼란다.”

 

오시다 넘어지시면 다치신 다리 덧나셔요. 어머니 제발...”

 

벌써 몇 번이나 나눴던 똑같은 대화.

어머님은 며느리를 서운케 할까봐 걱정이십니다만, 저는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습니다.

어머님뿐 아니라 친정 엄마에게도 절대 오지 말라 말씀드렸습니다.

딸 곁에는 든든한 신랑이 있으니 엄마는 서울 오지 말고 그냥 집에 계시라. 겨우 떨쳐낸 폐렴 도질까 무섭다고요.

 

전화기 속의 엄마는 내 말을 듣다가 가늘고 긴 한숨을 토해내더군요.

그리고는 기어이 내가 그토록 듣기 싫어하는 그 말을 하는 겁니다.

에휴 내 죄다. 내가 너를 젖배를 곯렸잖니. 못난 에미가 젖은 안 나오고, 돈이 없어서 우유도 맘 놓고 못 먹였어.

  멀겋게 타서 배만 부르게 했지. 그래서 네가 이런 희한한 병이 난 거 아닌가...”

 

아우, 이래서 내가 엄마한텐 비밀로 하려고 했던 거야. 엄마 젖이 여기서 왜 나와?”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이 빙그레 웃으며 끼어들더군요.

아까 장모님이 나한텐 뭐라고 하셨는지 알아?

  내가 걔를 낳을 때 잘 낳았어야 되는데 미안허네. 하시는 거야. 하하하.”

 

아아. 엄마들은 진짜 왜 이러실까요?

왜 씩씩하고 당당하게, 센 척, 쿨한 척을 못 하실까요?

뭐가 그렇게 미안하고, 눈물 나고, 죄스러우신 걸까요?

 

아홉 시를 넘기고서야 남편은 집으로 갔습니다.

자정쯤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요.

나는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보았습니다.

애들은 뭐하고 있을까?

작은 녀석은 아까 힘내라고 카톡을 보냈던데, 큰 놈은 아무 말도 없습니다.

하긴, 시험 앞두고 엄마 걱정하는 것보다 낫죠.

하필 시험 때 아파서 간식도 못 챙기는 엄마가 미안할 뿐이죠.

 

그러다 어느새 잠이 들었던 걸까요?

서늘한 기운에 눈을 뜨니 누군가 커튼을 젖히고 어둠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준호 아빠?

 

나야.”

 

자정에 나를 찾아온 사람은 남편이 아닌 아들이었습니다.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집에 가는 길에 들렀답니다.

뭐하러 왔느냐는 말에 아들은 그냥이라고 하더군요.

힘내라는 말도 걱정된다는 말도 없이, 환자복 입은 엄마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구경 온 듯 병실만 휘휘 둘러보는 아들.

그 쿨한 척하는 앳된 얼굴을 보니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터졌습니다.

 

엄마가 아파서 미안해. 우리 아들, 와줘서 고마워.”

 

아우, 진짜. 엄마 왜 그래? 챙피하게.”

 

좋아서 그래. 너 보니까 좋아서.”

 

, 진짜 엄마란 사람들은 왜 이럴까요?

왜 걸핏하면 눈물 나고, 미안할까요? 왜 가슴 벅차게 기쁘고 고마울까요?


내 엄마의 눈물이, 내 눈을 타고 흐릅니다. 주책맞게, 쿨하지 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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