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다방으로 오세요! - 길을 막고 지나가는 사람에게라도 물어보고 싶은 당신의 고민을 들어드립니다!

부러워요 형님 (10)
836
mrs****
2019-12-07
조회 22436
추천 12


참된 행복을 얻으려면 지혜와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지혜와 용기가 부족하다면, 든든한 내 편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내 편은 나의 아픔을 고스란히 느끼는 사람입니다.

나의 수고를 알아주는 사람, 나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사람입니다.

내 편이 있으면 나는 굳이 싸우지 않아도 됩니다.

지고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한 편이라면...

  

부러워요 형님!

  

너희 둘은 자매 같은 동서지간이 되거라. 얼마나 좋으니.”

어머님은 생전에 자주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새색시 때는 무조건 고개 조아리며 어머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려고 했지요.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반발심이 생겨났습니다.

진정 두 며느리의 우애와 화합을 위해 하시는 말씀이신지,

아니면 서로 시샘하는 자매들처럼 당신에게 효도 경쟁을 하라는 말씀이신지 영 헷갈렸거든요.

 

우리 어머님은 며느리 둘을 끊임없이 비교하셨습니다.

형 만한 아우 없다더니, 넌 아직 멀었다.’ ‘네 아우를 봐라. 형으로써 느끼는 거 없니?’

그 정도 말씀은 양반이고 어떨 때는 대놓고, ‘둘 중 누가 나한테 더 잘하는지 지켜볼 거야.’ 라고도 하셨지요.

마치 두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암투라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농담이라고 여기고 웃음으로 넘어가려 했지만, 그럴수록 어머님은 말씀의 수위를 높이셨습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며느리한테는 재산을 한 푼도 물려주지 않으시겠다느니,

미운 놈 떡 하나 준다지만, 나는 내 눈에 고운 놈한테만 몽땅 다 줄 거라느니...

 

사람마다 질색하는 게 다르겠지만, 저는 다른 건 다 참아도 힘으로 사람을 좌지우지하려는 건 못 참는 성격입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님이 바로 그런 단점을 갖고 계셨어요.

어머님께는 당신의 재산이 힘이었습니다.

힘을 가졌으니 상대방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믿으시고, 말씀에 거침이 없으셨지요.

그런 어머님이 저는 참 싫고 답답했습니다.

요즘의 똑 부러진 며느리들 같으면, 정식으로 말씀드렸을 수도 있겠지요.

제가 원하는 건 어머님께 점수를 따는 게 아니라, 어머님과 자연스럽게 정이 드는 것이라고요.

저를 가족으로, 한 사람으로 존중해주시기만 하면 제 나름의 효도를 다 하겠다고요.

그러나 그 시절엔 그런 당돌함이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속으로만 삭히다 보니 저는 갈수록 무뚝뚝하고 무성의한 며느리가 되어갔죠.

그러면서 어머님한테 받는 스트레스를 남편에게 하소연하기 시작했습니다.

지혜롭지 못한 줄은 알았지만, 달리 털어놓을 데가 어디 있겠어요.

 

문제는 남편의 반응입니다.

물론 어머님에 대한 불만을 듣기가 괴롭겠지만, 약간의 위로는 해줄 줄 알았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하더군요.

어머니가 당신을 미워하시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부담 주는 것도 아니잖나.

어법이 좀 투박하실 뿐. 평생 자식한테 물려줄 생각응로 돈을 번 분인데

그걸로 노인네가 생색 좀 냈기로서니 모멸감씩이나 운운하다니...

남편은 혀를 차다 말고, 끝에는 꼭 이런 말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형수님 좀 본받아. 어머니 말 한 마디에 빼쪽하고 안 그러시잖아.”

 

형수님얘기가 나오면 전 말문이 막히곤 했습니다.

한 어머니의 두 며느리로서, 똑같은 상황을 겪고 있지만,

자주 입을 내밀고 뻣뻣해지는 저와는 달리 늘 부드럽고 한결같은 형님.

어찌 보면 며느리로서 나의 무능과 못남을 확인시켜주는 버거운 존재였죠.

정말 자매지간이었다면 형님을 나의 롤모델로 삼았을지 모르지만, 동서지간이었기에,

무조건 흉내를 낼 마음은 안 들었습니다.

저는 경탄과 의심이 뒤섞인 눈으로 형님을 보곤 했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까?

심지어 시동생과 동서 앞에서 친정을 무시하는 말을 듣고도 보살 같은 미소만 짓던 우리 형님.

그런 형님을 남편은 천사처럼 착한 분이라고 치켜세웠지만,

저는 속이 좁아서 그런지 순순히 동의하지를 못하겠더군요.

착하다고 저렇게 속이 없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문제가 착하고 못된 성품의 문제일까?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꿈틀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아닌가?

 

당신은 형수님이 못나서 저러고 산다고 생각하지?”

한번은 남편이 술을 먹고 제게 그런 말을 하더군요.

아니라고 화를 내고 싶었지만, 정말 아닌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형님의 친정이 어렵지 않았다면, 본인의 경제적인 능력이라도 있었다면, 남편이라도 승승장구 잘 풀렸다면

저렇게까지 참아낼 수 있었을까 싶을 때가 있었으니까요.

사람이 못났다고는 생각 안 했지만, 처지가 다르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그날 저는 남편 못지않게 날카롭고 비틀린 말로 이렇게 대꾸했지요.

글쎄, 착한 거랑 못난 거랑 백지 한 장 차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

 

그로부터 세월이 이십 년쯤 흐른 지금, 어머님이 세상을 뜨신 지도 8년이나 되었습니다.

그토록 믿고 의지하시던 재산은 당신의 병원비와 사위의 사업자금 등으로 속절없이 부서졌습니다.

알고 보니 어머니는 허술한 분이셨더군요.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그동안 거듭 속고, 돈을 떼이셨던 겁니다.


그런데 희한한 건, 가족의 구심점이던 어머니와 어머님의 재산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뒤,

동서간의 우애는 오히려 조금 나아졌다는 겁니다.

요즘 저는 형님과 카톡방에서 대화도 자주 하고, 가끔 만나 가볍게 차도 마신답니다.

오늘아침엔, 형님이 전화로 기쁜 소식을 전하더군요.

조카가 내년 봄에 결혼을 한다고 말입니다.

 

형님은 분명 요즘 애들 같지 않은 착한 며느리 볼 거예요. 꼭 형님 같은...”

내가 착한 며느리였나?”

형님은 후후 웃더니 맘먹은 듯 말을 이었습니다.

동서는 몰라. 동서 시집오기 전에, 난리가 났었어.

 내가 어머님 때문에 힘들다고 하니까, 애들 아빠가 말야, 해외지사로 나가겠다고 신청을 해버렸더라고.

 우리끼리 나가 살자고.

 어머님이 그걸 용납하실 분이야? 당장 곡기부터 끊으셨지.

 그때 모자 인연 끊기는 줄 알았어. 내가 남편한테 싹싹 빌어서 주저앉힌 거야.

 지금 생각하면 애들 아빠가 아주 고단수였던 거 같아.

 내가 어머님에 대해서 무슨 말을 못하잖아. 사표 쓰고 당장 이민가자 그럴까봐.”

 

그랬구나. 그런 일이 다 있었구나...”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 그랬구나. 형님에겐 영원한 형님 편이 있었구나.

그래서 그렇게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구나.

형님은 못난 여자도 착한 여자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남편이 있는 여자일 뿐.

그리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내게 없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내가 왜 그렇게 나날이 까칠하고 삐딱해져갔는지를요.

저는 자존심 있는 여자도, 아쉬울 거 없는 여자도 아니었습니다.

남편을 내 편으로 차지하지 못한 여자, 그를 다룰 줄 모르는 여자였을 뿐...

 

형님은 좋은 시어머니가 되실 거예요. 아들이 며느리의 남자라는 걸 아시니까. 그래야 한다는 걸 아시니까요.”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심을 다해 형님에게 말했습니다.

 

부러워요,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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