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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마음의 돌 (40)
832
mrs****
2019-10-12
조회 22033
추천 10

누군가는 모래를, 누군가는 자갈을, 누군가는 바윗덩이를...

다들 마음에 뭔가를 담고 삽니다

우루루 쏟아내면 후련할 테지만, 우리는 그 짐을 조금 더 지고 가지요.

아직은 그럴 만한 힘이 있어서일까요?

혹은 내가 쏟은 돌들을 상대방이 주워 담아야 함을 알기 때문일까요?


아내 마음의 돌

  

아마 작년 봄쯤이었을 겁니다.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눈을 지긋이 감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처음 보게 된 것은요.

왜 그러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심장박동을 세보고 있다고 하더군요.

요즘 들어 맥박이 제멋대로 한 박자씩 건너 뛴다고 말입니다.

어서 병원에 가보라는 뻔한 말밖에는 생각이 안 나는 내게 아내는 한 마디를 더 하더군요.

덜컹대는 심장보다 더 요상한 건 몸의 이곳 저곳을 옮겨다니는 기분나쁜 통증이야.’

 

그해 여름 아내는 여러 병원을 전전했습니다.

동네 병원에서 대학병원으로. 거기서 다시 유명하다는 무슨 무슨 전문병원으로.

그러나 끝내 뚜렷한 원인은 찾지 못했지요. 류머티즘도 심장질환도 아니었습니다.

병원에서 듣게 되는 얘기는 기껏해야 커피를 줄여라, 수면의 질을 높여라, 스트레스를 피해라...

그래도 어쨌든 심각한 병은 아니라니 안심한 채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부디 시간이 약이 돼주길 바라며 저는 아내의 등이나 날갯죽지, 팔 다리를 수시로 마사지 해주곤 했지요.

 

생각해보니 뭔가 좀 달라졌다고 문득 느낀 건 두어 달 전쯤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최근 얼마간 아내의 호소를 듣지 못했음을 깨달았지요.

본인에게 물으니, 맞는 말이라고, 그새 많이 좋아졌다고 하더군요.

반가운 마음에 물었습니다. 뭐가 통한 거야? 그 유명하다는 침?

아내는 애매한 웃음을 짓더니, 이윽고 결심한 듯 털어놓더군요.

 

실은 나, 얼마 전부터 상담치료 받고 있어. 말하지 않고 속에다 쌓아두는 성격 탓에 몸이 신호를 보내서 아픈 거래.”

 

아내가 저 몰래 심리상담치료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남편으로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우선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결혼생활도, 아내의 일상에도 별 문제가 없다고만 생각했던 제 둔감함에 대해서요.

그러나 다음 순간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참 다르구나.

남자가 다 저와 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평범한 남자라면 자기의 고민이 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밖으로 드러내서 해결할 수 있는 거면 드러내고, 안 될 일이면 품고 살지요.

누군가와 상담을 해가며 나도 몰랐던 내 속마음을 찾아간다는 것은 어째 좀 말장난같이 여겨진달까요?


그러나 아내에게는 그게 엄연한 현실이며 특효약인 모양이었습니다.

상담선생님을 만나고 오면 몸과 마음이 가볍다더군요.

심지어 자신이 여태 잘못 살아온 것 같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참는  게 곧 착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마음의 병을 키우고 관계를 해치는 잘못이더랍니다.

아닌 걸 아니라고 말 못하고 침묵한 순간들을 후회한다고요.

 

솔직히 그 말에 100프로 동의한 건 아닙니다.

저 역시 살아오면서 할 말을 참았던 적이 많습니다만, 그게 다 잘못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내가 참은 결과 일이 성사되고, 관계가 더 발전하는 경우도 많았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아내의 말에 딴지를 걸지는 않았습니다.

중요한 건 아내의 이상증세가 호전되었다는 사실이니까요.

부디 열심히 상담 받고, 치료효과를 보기 바랐죠.

필요하다면 아내와 상담의가 지나온 내 실수들을 끄집어내고, 잘못들을 다 들춘다 해도 상관없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며칠 전 아내가 할 말이 있다며 다가오기에 저는 속으로 다짐을 했습니다.

아내가 어떤 얘길 끄집어내도 내 잘못을 인정하자.

그러나 얘기를 듣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녀의 말을 가로막고 되묻게 되더군요.

잠깐만, 그러니까 지금 부모님께 그런 내용의 편지를 써서 보내겠다는 거야?”


그제야 비로소 드러난 아내의 속마음은 당황스러웠습니다.

가슴속에 쌓아온 돌덩이 중 가장 크고 무거운 돌은 남편인 저한테서 굴러온 돌이 아니라,

시부모님한테서 온 돌이라는 겁니다.

애초에 상담치료를 받으러 갈 때도, 고부간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간 거였다는군요.

그 대목에서 저는 바보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 집에 더 이상 무슨 고부 문제가 있기에? 다 지난 일 아니야?

 

신혼 때는 부모님과의 갈등으로 힘든 적도 있었습니다.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 저희 부부를 부모님은 이해하지 못했으니까요.

설득하려는 생각으로 자꾸 다가오시니, 며느리로서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그러나 다행히 그 괴로운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요.

아내가 잘 참아준 덕에 부모님의 태도는 바뀌었으니까요.

지금은 여느 고부보다 평화롭고 안정적으로 잘 지내고 있다고 저는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겉은 평화로워도 마음은 늘 괴로웠다고요.

아이 문제로 들었던 서운한 말들, 배려 없고 매몰찼던 순간들의 기억을 잊지 못한답니다.

조카들 와 있으니 무턱대고 오라고 부를 때, 아들 인생의 큰 걸림돌처럼 쳐다보실 때 바보처럼 웃기만 한 자신이 밉답니다.

그래서 아내는 지금 부모님께 긴 편지를 쓰고 있다네요.

그때, 그 상황에 그런 말씀 하실 때, 저는 얼마만큼 괴로웠노라고 하나하나 아주 구체적으로 쓰고 있답니다.

그렇게 한번 해보라고 상담의가 권했다나요.

 

저는 뭐라 말해야 할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헤쳐 좋은 관계로 정착이 되었는데 새삼 그런 얘기를 꺼낼 필요가 있을까요?

아마 그 편지를 받으면 부모님은 충격을 받으실 겁니다.

아내의 마음이 가벼워지는 만큼 늙으신 부모님에겐 상처를 드려야 하는 일일 겁니다.

저는 아내에게 간곡히 말했습니다.

어쨌든 요즘은 안 그러시잖아. 내가 잘 참아서 오늘의 결실을 맺었다 생각하면 안 될까?”

그러자 아내는 대답하더군요.

무슨 결실? 난 마음이 닫혀 있는데...?”

그런 걸 써 보내서 얻는 게 뭐야? 부모님께 사과라도 받아내려고?”

부모는 자식에게 사과하면 안 되는 거야?”

이럴 때, 아픈 여자의 남편이자 늙은 부모의 아들인 저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요?

말문이 막히니 그만 헛말이 나오더군요.

사람이 어떻게 할 말을 다 하고 사니? 나도 결혼 반대하시는 장인 어른한테 별 소리 다 들었지만, 한 마디 안 했어.”

당신도 해. 지금이라도 해. 속에만 삭혀두지 말고.”

 

저는 아내의 눈을 쳐다보았습니다. 어디까지가 그녀의 진심이고, 어디서부터가 마음의 병인 걸까요?

나는 바지를 꿰어입고 집을 나서며 등뒤의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아니. 난 안 할 거야. 그때 할 말 않고 꾹 참은 내가 대견해.

 그 덕에 당신과 결혼 할 수 있었고, 장인어른한테도 뚝심 하나는 인정 받았어.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대도 나는 참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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