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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케 언니의 내로남불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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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s****
2019-09-28
조회 18089
추천 8

착한 사람, 똑똑한 사람, 예쁜 사람...

그러나 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갈수록 말귀 통하는 사람이 제일 반갑습니다.

수학공식이나 법조항은 몰라도 상대방이 어떻게 느끼고 무슨 생각을 할지 아는 사람.

너와 나를 똑같은 검은 돌 흰 돌로 놓고, 위에서 내려다보며 잘잘못을 따질 줄 아는 사람이 말입니다.

 

 

세상은 그야말로 넓고도 좁은가 봅니다.

몇 해 전의 일입니다만, 친정 조카의 결혼식에서 사돈 측 하객으로 온 제 친구를 우연히 만났으니 말입니다.

저는 신랑의 고모, 제 친구는 신부의 이모이더군요.

그날은 경황이 없어 그대로 헤어졌지만 조만간 밥이나 한번 먹자고 약속을 했죠.


각자 사는 게 바쁘다 보니, 우리는 결혼식 이후로 몇 달이나 흐른 뒤에야 마주앉게 되었습니다.

네 조카에 대한 칭찬, 내 조카에 대한 자랑, 그리고 우리의 별난 인연에 대한 감회로 한동안 수다를 떨었지요.

그러다 문득 씁쓸한 생각이 들더군요.

나는 왜 이런 훈훈한 얘기를 오빠 내외에게는 아직 하지 않았을까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 이유는 올케언니와의 냉랭한 거리감 때문입니다.

제게는 올케 언니가 세 분인데, 유독 이 언니와는 정을 나누며 지내지 못했습니다.

다른 두 언니와는 어쩌다 얼굴 붉히는 일이 있어도 나중엔 마음이 풀어지곤 했는데,

둘째 올케 언니와는 그게 잘 안 됐습니다.

아예 얼굴을 보기가 어려웠으니까요.

결혼하고 5 년도 못 돼서, 언니는 시집에 발길을 끊다시피 했습니다.

명절에도 집안 행사에도 오빠와 조카만 오고, 언니는 오지 않았지요.

워낙에도 내성적이고 말이 없는 오빠는 그 이유를 잘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집사람이 힘들어한다, 소외감을 느낀다더라라고만 하는데, 우리 식구들은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엄마가 한번 며느리를 불러서 물었다더군요.

대체 무엇 때문에 시집식구들에게 영 정을 못 붙이는 거냐고요.

그 때 언니가 했다는 대답은, “제발 우리끼리 잘 살게 내버려 두세요!”

 

그 뒤로는 오빠 얼굴을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것도 다행이라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엄마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마음 아파하셨지만, 우리 형제들은 억지로 뭘 어떻게 해볼 생각을 안 했습니다.

안 맞는 사람들끼리는 안 보고 사는 게 맞다!

그게 그나마 젊은 세대였던 우리들의 생각이었지요.

 

조카의 결혼식에는 그래도 안 갈 수 없어 다들 참석했고, 그곳에서 저는 그 친구를 만난 겁니다.

그러니 그런 얘기를 올케언니에게 주절주절 떠들어댈 수가 없었지요.

그런데 뜻밖이었던 건, 제 친구 역시 저를 만난 얘기를 언니에게 아직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친구에게도 그럴 만한 속사정이 있는 것인지, 머뭇거리며 이유를 설명하더군요.

 

실은, 우리 소영이 결혼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어.

 시어머니가 처음부터 며느릿감이 눈에 안 찬다고 반대했거든.

 애들이 설득해서 간신히 허락을 받았는데, 준비 과정에서 두 번이나 파토내려고 하시더라. 네 올케 언니가 말야...”

 

아니, 대체 무슨 이유로?”

 

저는 하도 어이가 없어, 마음에도 없는 멍청한 질문을 했습니다.

이유가 있으면, 그런 짓을 해도 된다는 듯이 말입니다.

친구는 아주 작심한 듯 설명을 하더군요.

 

솔직히 우리 소영이가 너희 조카한테 처지는 조건은 아니잖아.

 처음에 턱없이 반대할 때 엎었어야 하는데...

 지성이면 감천인 줄 알고 매달렸더니, 결국엔 며느리의 도리 어쩌고 하며 없는 흠을 잡으시더라고.

 조선시대에나 통할 법한 예법을 들이밀면서, 어른 몰라 본다, 잘못 배웠다...

 이제 와 얘기지만, 그날 완전 눈물의 결혼식이었고, 아직까지도 우리 언니는 좌불안석이야.”

 

친구는 눈물까지 머금으며, 시집간 조카딸을 걱정하더군요. 그러면서 이렇게 묻는 겁니다.

 

네 올케 언니란 분, 어떤 분이니? 어떻게 살아오신 분이기에 그렇게 눈이 높으셔?”

 

저는 무어라 할 말이 없었습니다.

뭐라고 말할까요? 워낙 법도에 밝고, 흠결없는 삶을 살아온 분이니 시어머니 본받으라 전하라 할까요?

본성은 따뜻하고 정이 많은 분이니, 조금만 견뎌보라 할까요?

아니면, 완전 겉다르고 속다른 사람이니 무시해 버리고 발길 끊으라 말할까요?

고모로서, 시누이로서 어떻게 차마 그런 말을 하겠습니까.

 

그 날 헤어지면서 친구는 그러더군요.

제발 젊은 애들 둘이 잘 살게 내버려두면 좋겠다고요.

그 말은 수십 년 전 우리 올케언니가 했다는 말인데, 돌고 돌아 본인에게로 되돌아온 셈입니다.

요즘 자주 들리는 내로남불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걸까요?

내가 당하면 시집살이이고, 남에게 요구할 땐 며느리의 도리이니 말입니다.

 

이후로 친구는 간간히 소식을 전해오지만, 젊은 조카 부부 이야기는 일부러 안 하는 듯 했지요.

저도 굳이 묻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흐른 이번 추석에, 저는 뜻밖에도 올케 언니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무슨 일인가 놀라서 전화를 받은 내게 언니는 다짜고짜 묻기부터 하더군요.

 

고모 친구가 그 집 이모라면서요? 그 집안 사람들 원래 그래요?”

 

그러더니 곧 흥분해서 며느리와 사돈을 싸잡아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의 결혼은 이제 파토나게 생겼고, 그 원인은 전부 본데없는 며느리에게 있다고요.

저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언니에게 한 마디만 말했습니다.

 

언니. 우리도 철없을 때 부모한테 불효 많이 했잖아요. 젊은 애들 둘이 잘 살게 놔두세요.”

 

그러나 언니는 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기에도 바빴지요

 

저도 한 집안 며느리이고, 아시다시피 고부갈등으로 평생 숨죽여 살아온 사람이에요.

 그래서 내 며느리에게는 그런 아픔을 주지 말자고 다짐을 했어요.

 정말 잘해주고 싶었고, 진짜 가족이 되고 싶었다고요.

 그런데 돌아오는 건 배은망덕 뿐이네요.

 시어머니인 나를 밀어내고, 부모형제를 끊어낼 생각 뿐인 거예요.”

 

저는 그날 세상에 만연한 내로남불의 또 다른 원인을 알았습니다.

그건 이기적인 자들의 비겁한 술책일 수도 있지만, 일종의 정신적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을요.

스트레스에 약하고, 참을성도 없는데 우월감과 허영심만 강한 사람,

결정적으로 입장 바꿔 생각하는 공감력이 절대 부족한 사람이 겪는 마음의 병일 수도 있다는 것을요.

 

언니를 한심해하는 마음보다, 이제는 안 됐다는 마음이 더 큽니다.

저런 마음가짐으로, 본인은 살기가 얼마나 힘들었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불화를 겪어왔을까요?

 

태생이 남다르고, 심신이 여리고, 생각이 깊은 나를

강철처럼 무지막지한 세상의 로봇들이 감히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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