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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거짓말, 아내의 비밀 (12)
828
mrs****
2019-08-26
조회 24068
추천 6

 

지루함과 외로움.

그 둘을 맞바꿀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사는 게 지루하다면, 곁의 사람에게 말해보세요.

너의 외로움을 내게 주고 이 지루함을 가져가달라고.

거짓 지루함, 값싼 외로움을 핑계로 배우자에게 상처주지 말고...

 

<남편의 거짓말, 아내의 비밀.> 


자정 넘어, 술에 취해 들어온 남편은 침대로 직행해 곯아떨어져 버렸습니다.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들을 치우다가, 그의 핸드폰을 주워들었죠.

그런데 그 순간, 핸드폰이 제게 말을 걸더군요.

비유법이 아니라 진짜로, 전화기가 평소보다 묵직하게 느껴지며 손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거실로 나와 그 수상한 전화기를 열어보았습니다.

비밀 패턴이 걸려 있어 어차피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요.

그런데 문득, 어떤 기억이 나더군요.

한 달 전쯤, 둘째 녀석이 그랬습니다.

알고보니, 아빠랑 자기랑 같은 패턴을 쓰고 있었다고요.

제 손은 액정 위를 저절로 미끄러져 아들의 자 패턴을 그렸습니다. 설마 했는데, 정말 열리더군요.

 

배우자의 폰을 훔쳐보고 있다는 죄책감은 1분도 채 가지 않았습니다.

오늘 동료들과 회식을 했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거든요.

그는 동료들이 아닌, 친구들 서넛과 술을 먹고 왔습니다.

그 사실을 제게 감춘 이유는 단 하나.

다신 만나지 않겠다고 제게 약속했던 한 여자가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그녀는 제 남편의 여사친이었습니다.

대략 오륙 년 전쯤, 일 때문에 알게 된 사이라는데, 금방 죽이 맞아 서로를 오라버니, 동생이라 부르며

수시로 메시지를 주고받고, 술자리를 만드는 그런 사이가 되었던가 봅니다.

그러면서도 저한테는 그녀의 존재가 비밀이었는데,

삼년 전의 어느 날 우연하게 들통이 나고 말았죠.

그날도 동창들과 술을 마셨다고 거짓말을 하고 남편은 곯아떨어져 있었죠.

그런데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각에 전화벨이 울리지 않겠어요.

받아보니 여자였습니다.

오라버니 어디냐고, 제 남편을 애타게 찾더군요.

저는 태연한 척, 대답했습니다.

, **씨 와이픈데요...

거기까지 말하자마자 그녀는 전화를 톡 끊었습니다.

곧바로 제가 그쪽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더군요.

 

다음 날 아침, 남편에게 지난 밤의 불쾌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그 여자 누구냐고 따졌습니다.

남편은 그냥 친구라고 하더군요.

친구라면, 간밤의 무례부터 사과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쿨하게 남편 친구로 인정하겠다고요. 그랬더니 남편이 하는 말.

 

아마 걘 기억도 못 할 걸. 원래 술버릇이 그런 애야. 뭘 신경 써?”

 

어떻게 신경을 안 써? 당신이 거짓말까지 하고 몰래 만나는 여사친인데.”

 

내가 널 속이고 뭘 어째보려고 거짓말 한 줄 아니? 떳떳하니까 굳이 말 안 한 거야.”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혔습니다.

떳떳하니까 거짓말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더구나 '초롬이'라는 닭살 돋는 애칭은 뭐며, 자기 네일케어 받고 온 손가락 사진 따윈 왜 보내는 거죠?

썸타는 중이 아니라면, 아무에게나 선을 넘는 무개념이 아니냐고 했더니 남편은 버럭 화를 내더군요.

 

넌 앞뒤 꽉 막힌 여자가, 꼭 이럴 때면 상상력이 블랙홀급이더라.

  아무 사이 아니고, 그냥 생각이 자유롭게 틔인 애야.”

 

생각이 틔어서 전화매너가 그 지경이군?”

 

, 됐어. 안 만나면 되잖아. 다신 안 만나. 됐니?”

 

그 일로 우리는 며칠간 냉전을 벌였습니다.

남편의 여사친이 무조건 싫은 게 아니라, 남편의 당당한 거짓말과, 대충 얼버무려 넘어가려는 태도가 더 화났습니다.

그래도 남편이 속으론 뜨끔했는지 다시는 안 만나고, 일체의 개인적 접촉은 끊겠다고 약속하더군요.

 

솔직히 그 말을 그대로 믿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계속 의심하고 확인하며 사는 게 제 체질에는 영 맞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고, 내게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으로 삼 년을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뭔가요?

생전 처음 훔쳐본 남편 폰 속에, 연락처 이름만 바꾼 채로, 그들은 여전히 친구사이네요.

일상의 사진이나 친밀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가끔 어울려 술을 마시는 관계 말입니다.

더구나 단둘이도 만났던데, 그나마 밤이 아닌 점심시간이었다는 게 이번에 남편이 내세울 알리바이일까요?

 

동이 터올 무렵 저는 남편을 두드려 깨웠습니다.

핸드폰을 내밀며 이게 뭐냐고, 설명해보라고 했죠.

잠이 덜 깬 남편은 잠시 멍해있더니, 곧 얼굴을 험악하게 찌푸리더군요.

그리고는 되려 화를 내며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래. 만나서 즐겼다. 하도 사는 게 지루해서, 쉬운 여자랑 술잔 기울이며 기분 좀 냈다.

 사랑하는 마누라가 줄 수 있는 게 있고, 밖의 쿨한 여자친구가 줄 수 있는 게 따로 있더라.

 그래서 뭐? 난 차라리 네가 밖에서 나  몰래 좀 즐겼으면 좋겠다.

 정말 바람이라도 나서, 나를 좀 이해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게 얼마나 무의미하고 아무것도 아닌지.”

 

그 어처구니 없는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십 년 결혼생활 끝에 나는 남편이란 인간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은데,

남편은 여전히 나를 전혀 모른다고 말입니다.

아마도 나는 남편을 늘 연구하고 남편과의 관계에 고민이 많지만, 남편은 아무것도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사실 저는 남편에게 이렇게 화를 낼 자격이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편이 저를 여자로 보지 않고 멀리했던 지난 십여 년, 저 역시 오매불망 남편의 손길만 기다리며 살지는 않았거든요.

한동안 저는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고 살았었습니다.

따뜻함이 느껴지는, 생각만 해도 가슴 속에 불이 켜지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일 때문에 마주쳐야 하는 그 사람이, 저에게는 삶의 활력소였습니다.

매주 목요일은 그 사람을 생각하며 천천히 화장하고, 옷을 한 번 더 갈아입었었죠.

그러나 저는 맹세코 아무런 허튼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을 표현하지도 않았고, 일과 무관한 대화를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제게 손을 내밀더군요.

같이 저녁 먹자고요.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유혹에 넘어갈지 모른다 생각했었는데,

현실의 저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그 청을 매몰차게 거절하더군요.

아마도 무서웠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켜야 할 가정이 있기에 더 이상 위험한 게임을 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아무리 선을 그어놓는다 해도, 그런 감정의 게임을 위해 아이들 앞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고,

남편에게 상처를 줘야한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짓이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남사친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무어라 부를 필요도 없이 제 인생에서 힘껏 지워버렸습니다.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라 믿었기에 더 이상 가까이 둘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이해할까요, 이런 감정을?

 

남편은 사는 게 지루했다 말합니다.

그 시간, 저는 좀 외로웠습니다.

남편에게 필요한 자극을 저는 주지 못합니다.

저에게 절실한 공감을 남편은 주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서로에게 정직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남편의 작은 거짓말들과, 저의 큰 비밀 중 어느 쪽이 더 무거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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