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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때문에 이혼한 게 아니었나?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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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s****
2019-08-18
조회 47898
추천 18



시부모님, 특히 시어머니 문제로 저희는 결혼생활 내내 힘들었습니다.

남편이 자식 넷 중 가장 잘나고 순한 성격이었는데요

어머님이 모든 관심과 사랑을 그 아들에게만 쏟고

나머지 세 자녀와는 거의 등지다시피 했었죠.

(차별문제는 아니고, 당신의 특이한 성격 때문에 자식들 각자와 갈등)

저는 불행히도, 그 사랑하는 아들의 아내였고요.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생긴 것을 아는 순간부터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는 분인데

시어머니가 되고는 오죽하셨을까요?

분가는 안 된다 해서 신혼 때 2년 가까이 합가해 살았습니다. 

그때 제가 체중이 엄청 빠지고

과민성 대장염으로 정상생활이 안 될 정도였습니다.

그 때는 제가 순진해서, 원래 시집살이가 이렇게 고된 줄 알았지만

나중에 사람들한테 우리집 풍경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정상이 아닌 거 알았어요.

어머님과 남편이 부부로 지내고

저와 아버님은 군식구로 생활...

 

다행히(?) 남편과 제 직장 문제로 분가를 하게 되었죠.

그 뒤로도 십여 년 간 별별 어이없고 험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저한테, 아예 시집에 발을 끊으라고 하는데

그건 제 성격도 받쳐줘야 하고, 시집 분위기나 남편의 지지도 있어야 가능한 일이더라고요.

제가 시집 발걸음을 안 하면, 시어머니는 맨발로 뛰어와서

행패를 부릴 분입니다.

이혼시키겠다고 난리칠 테고, - 실제로 그랬던 적이 많아요.

그러면 남편은 딱 부러지게 제 편을 들지 않아요.

일단 그 자리에선 네 네 어머니,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하고 난 뒤에, 저한테 빌고 사정하는 답답한 인간이죠.

 

그래서 저는 시어머니를 상대로 강수를 둘 수가 없었습니다.

끌려다니며, 맞춰드리다 실수 하고, 그러면 계모하테 구박받는

코흘리개 애처럼 막말을 들어야 하고..

 

 

결국 이혼했어요.

그거밖에 길이 안 보이더라고요.

시어머니로부터 벗어나는 길이기도 했고

마마보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남편, 버릇을 고쳐놓는 길이기도 했어요.

웃기게도, 저희는 별거보다 먼저 이혼장부터 접수했답니다.

이혼 서류 완성 안 하면 내가 죽을 거 같더라고요.

나가는 건 천천히 나가더라도, 이혼은 해달라고 제가 졸랐어요.

그랬더니, 한참 버티던 남편이 해주더라고요.

 

이혼하고 나니, 뭔가 허전하면서도 한숨 놓이더군요.

나는 더 이상 아무 의무도 없고, 이상한 사람들과 엮일 일도 없는

남남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시어머니 전화도 안 받았고, 만나지도 않았고,

남편한테도 내 앞에서 시어머니 얘기 못 꺼내게 했습니다.

이혼해버렸다는 걸 알았는지, 달려와 문 밀고 들어오진 않더군요.

 

그렇게 좀 살다 남편과 따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혼했으니 한집에 사는 것도 우습죠.

남편은 집과 차, 등은 다 저에게 주고 몸만 나갔어요.

한 달에 얼마씩 평소 쓰던 생활비 그대로 양육비를 준다고 했고,

그 약속은 꼬박꼬박 지키고 있어요.

워낙 성실하고, 능력도 있는 좋은 아빠였기에 가능한 일이죠.

게다가 남편은 제 건강을 걱정해주고, 아이가 혹시 힘든 사춘기를 맞지 않을까

늘 신경써줬습니다.

함께 살 때는 마마보이에 찌질한 남편이었는데

따로 살기 시작하니 좋은 친구에 동반자 관계가 가능하더군요.

언제 시어머니의 전화벨이 울릴지 몰라,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그런 일도 없으니,

저는 살 것 같았어요.

 

그렇게 따로 지낸 지 3년이에요.

그런데 어제 우연히 지인의 SNS 사진을 통해

남편이 사귀는 여자가 있는 걸 알았습니다.

곧 결혼할 사이인 걸로, 주위에 알리고 있는 모양이더라고요.

 

충격받았고, 솔직히 진정이 안 됩니다.

이혼했으니까, 그것도 내가 원해서 이혼했으니까

남편이 누굴 사귀든 말든 자유겠죠.

결혼을 하는 것도 문제가 없고요.

그런데 왜 이렇게 막막하고, 억울할까요?

 

우린 남녀로 사이가 멀어져 헤어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 둘 사이의 일로는 한번도 싸워보지 않았어요.

늘 시어머니, 시어머니, 시집식구, 시집 행사,

그런 걸로 다퉜었죠.

그리고 대부분 남편과 그의 가족들이 내게 잘못했었고,

나는 참다 참다 두 손 들고 나온 거 뿐이에요.

그 뒤로도 우린 아이의 엄마 아빠로, 잘 지내왔습니다.

제 자신, 재혼이나 이성교제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에

남편도 지금의 상황에 충실할 생각인 줄 알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소개받고, 사귀고, 결혼준비까지 하고 있는 줄은

정말 몰랐어요.

 

저한테 건강 챙기라고, 건강을 잃으연 안 된다고

말했던 건, 그저 뜻없는 인사말에 불과했던 걸까요?

 

함께 살 때 남편은 늘 말했습니다.

어머님, 사셔봤자 십년이라고, 우리가 환갑 되기 전엔 돌아가신다고요.

그 때가 되면 우린 누구보다 자유롭고 평화롭게 노년을 즐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제가 그 시간까지 참아내지 못하고 뛰쳐나오긴 했지만,

남편과는 언제나 동반자로 남을 줄 알았던 겁니다.

남녀는 아니어도, 동지로 남을 줄 알았는데, 남자는 그게 아니었나봐요.

자기는 어머니 때문에 어차피 어떤 여자와도 행복하게 살 수 없다더니

그것도 빈말이었나봅니다.

그런 어머니를 포용(?) 혹은 인내할 수 있는

좋은 여자를 만난 걸까요?

그 고통스러운 길을 한번 더 가보고 싶을 만큼, 좋은 사람을 만난 걸까요?


  

이혼을 후회하는 건 아닙니다.

지금 되돌아간대도, 계속 더 참고 살지는 못해요.

그 집에서 나오긴 나와야 해요.

그러나, 헛된 기대나 비현실적인 그림을 그리며 이혼을 감행했다는 게 부끄럽습니다.

이혼이 얼마나 결정적이고 냉엄한 것인지 모르고

당장의 고통과 구속을 벗어날 수 있는 마법의 지팡이로 생각했습니다. 


제가 어리석었네요.   

애초에 결혼할 때, 남자 본인만 보지 말고 그 가족을 봐야 했습니다.

가족이 괴롭히면, 둘 사이가 좋을 수가 없어요.

다 식어버리고, 썩어버리죠.

그리고 남녀의 인연보다는 부모 자식의 유전자와 혈연이 더 무섭다는 거...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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