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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어머니의 연대 (10)
822
mrs****
2019-06-29
조회 20384
추천 11

 

어머니는 어머니를 알아봅니다.

여자로서 흘려온 눈물에 함께 울고, 아낌없는 자식사랑에 공감합니다.

진짜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가운데 놓고 다투지 않습니다.

커다란 울타리로 감싸 안을 뿐...

    

두 여인의 연대, 영원하길...

 

저 드센 범띠 가시내를 장차 어데 시집보낼꼬.”

우리 할머니는 자주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엎드려 열심히 숙제를 하고 있는 얌전한 손녀를 보고도 말입니다.

그때마다 저는 입을 쑥 내밀고 속으로만 투덜거렸지요.

! 걱정 마세요. 난 시집 안 가고 평생 공부할 거니까.

 

그런데 훗날 돌이켜보니, 그 시절 할머니의 말씀이 정말 불편했을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부엌에서 밥 안치거나 마당에서 빨래 널던 우리 엄마 말입니다.

엄마도 범띠셨거든요.

더구나 시집와서 범띠, 말띠 딸 둘만 낳고 여태 아들은 낳지 못한 박복한며느리이고 보니

시어머니의 띠 타령을 그저 웃어넘길 수는 없었겠지요.

 

띠 얘기를 하자면, 또 우리 시어머님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결혼 전, 처음 인사 드리던 날 어머님이 넌지시 물어보시더군요.

 74년생이면, 범띠 아니냐고요.

순간 저는 좀 당황했지만, 범띠 맞다고 다소곳이 말씀드릴 수밖에요.

어머님은 아무 말씀 없이 미소를 지으시더군요.

그 모나리자 같은 미소의 참뜻은, 첫 아이를 낳고서야 알게 됐지요.

, 실은 내가 범띠란다. 38년생인데, 우리 아부지가 39년생을 만들어놓으셨지. 범띠 팔자 드세다고...”

 

이 무슨 묘한 인연일까요?

이제보니 띠동갑 여인 셋이, 모녀로, 고부로, 사돈으로 얽힌 겁니다.

그러나 우연의 일치는 거기까지일 뿐, 세 여인의 인생은 닮은 점이 거의 없습니다.

제 친정엄마는 형제 많은 집안에 맏며느리로 시집와 30년간 시부모를 모시며 매운 시집살이를 하셨습니다.

더구나 아들을 못 낳은 허물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니, 열 일을 하고도 기를 펴지 못했죠.

가녀린 몸으로, 너무 많은 사람에게 시달리며, 너무 많은 일을 해내야 했던 고달픈 인생이랄까요.

반면 우리 어머님의 인생은 무척 외로웠습니다.

이북 출신이라 혼잣몸이시던 아버님을 만나, 젊은 시절엔 두 분이 억척으로 재산을 일구셨죠.

늦게 얻은 아들 하나도 건강하게 자라주어 이제 남부러울 것이 없다 하셨는데,

그 행복이 말년까지 이어지지는 못하셨습니다.

워낙 연세가 많으셨던 아버님이 더구나 일찍 돌아가시면서, 어머님은 긴 시간을 홀로 보내셔야 했죠.

 

누가 더하고 덜하다 할 수 없이 고단했던 두 어머님의 인생.

그런데 결혼 초에 가끔 어머님은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래도 사부인은 앞으로가 괜찮아. 친구 같은 딸이 둘이고, 무엇보다 서방님이 곁에 계시니까.”

그러면 저는 평소 엄마한테 들어온 말로 위로 아닌 위로를 해드리곤 했죠.

어머님, 그렇지도 않아요. 사이 나쁘고 손이 많이 가는 늙은 서방님은, 아니할 말로, 족쇄나 다름없다던데요.”

그럼 우리 어머님은 펄쩍 뛰시며 반박하십니다.

어허, 거 모르는 소리. 아파서 누운 서방님도, 사고뭉치 서방님도, 여자한테는 서방님이 울타리인 걸.”

 

저는 가끔 우리 시어머님의 말씀을 친정 엄마에게 전하곤 했습니다.

제발 아버지를 너그러이 봐주며 사이좋게 지내시라는 의미로요.

그러나 엄마는 만만찮은 기세로 재반박을 하실 뿐입니다.

사부인은 워낙 금슬이 좋으셨기에, 평생 웬수 같은 남편이 어떤 건지 모르신다.

 앞으로 얼마 안 남은 내 인생이 편하다고 흘러간 청춘의 사십 년 시집살이의 한이 풀리겠나?

 더구나 지금까지도 저렇게 잔소리에 어깃장인 남편인데?”

 

한동안 두 분은 누가 더 불행한 여자의 일생이었는지를 마치 경쟁이라도 하는 듯 했습니다.

저에게 심판을 봐 달라는 듯이 말입니다.

남편은 껄껄 웃으며 그 이유를 이렇게 분석해 내놓더군요.

당신을 놓고, 두 양반이 쟁탈전을 하는 거야.

 장모님은 맏딸에 대한 종신지분을 유지하려고 하시는 거고,

 우리 어머니는 사부인의 장남 같은 맏딸을 어떻게든 내 며느리로 끌어당기시려고...”

 

남편의 분석은 그럴 듯 했습니다.

그러나 여자의 눈치로 보충을 좀 하자면, 두 분은 아직 상대방을 믿지 못 하고 계신 것 같았죠.

혹시 내 딸도 나처럼 호된 시어머니를 만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

혹은 아들 없는 사부인이 딸을 끼고 앉아 내 하나뿐인 아들까지 데려가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엿보였죠.

 

그러나 세월은 흘러 벌써 결혼 16년차입니다.

사소한 오해는 여러 번 겪었지만, 그 바람에 신뢰가 깨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두 분 모두 자식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이 한 몸의 불편과 쓸쓸함은 기꺼이 감수하실 분들임이 입증되었지요.

안타까운 건, 세월만큼 쇠약해진 두 분의 건강입니다.

어쩌다보니 올해는 연초부터 두 분 모두 병원 신세를 지셨습니다.

지금은 각자 자택에서 요양중이신데, 양쪽으로 자식 노릇을 못 하고 있는 저희는 매일 전화를 드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안타까운 전화통화가 저를 웃프게도 만드네요.

두 분 어머님은 저를 가운데 놓고, 요즘 경쟁적으로 서로를 챙기십니다.

마치 모종의 연대를 맺으신 것처럼요.

 

엄마한테 잘해드려라. 그 가녀린 몸에 애들 봐주시느라 얼마나 고생하셨니?

 나중에 후회 말고 낳아주신 부모님께 원없이 잘 해.”

 

시어머님 자주 찾아 뵙고 딸처럼 살갑게 대해드려.

 아들 하나 믿고 살아오신 분인데 그 아들을 너한테 내주신 분이다. 그만한 시어머니도 없으시고...”

 

이번에도 남편은 냉철한 분석을 내놓습니다.

사부인께 잘해드리라 소리가, 나한테도 잘해달라 소리라고요.

그러나 저는 여자의 감성으로 보충을 좀 하고 싶습니다.

두 어머님은 이제 서로에게 감사하고 계시다고요.

내 딸이 신랑과 알콩달콩 살 수 있도록 한 걸음 물러서주신 외로운 사부인께.

손이 귀한 집안에 태어난 두 손주를 건강하게 키워내시느라 또 한 번 고달픈 시간을 보냈던 사부인께...

 

이 자리를 빌어 저는 두 어머님께 큰 절을 올립니다.

범띠 가시내인 제가 누구보다도 평범한 여자의 삶을 나름 재미나게 살아올 수 있었던 건 두 어머님의 희생 덕분입니다.

사돈에게 생색내거나 자식에게 보상받으려 하지 않고,

당신 시대의 불행은 그 시대의 것으로 끝내려 하셨던 두 분의 지혜로운 양보 덕분입니다.

 

두 분의 범띠 연대 혹은 호랑이 의리,

부디 제 곁에 오래 머물러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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