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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꽃, 엄마의 꽃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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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s****
2019-04-06
조회 24861
추천 33

 


사랑한다는 말은, 들을 때보다 할 때가 행복하지요.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의 아픈 거짓말은, 할 때보다 들을 때가 더 아픕니다.

우리가 가슴속에 숨겨온 그리움과 안타까움은 이제 곧 꽃이 되어 활짝 피어나겠지요.

봄이 오면...

   

딸의 꽃, 엄마의 꽃


 

수십 년 전의 일입니다만,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막 돌 지난 큰애를 데리고 친정에 갔을 때, 무심코 빛바랜 가족 앨범을 뒤적이다가,

어느 한 페이지에 이르러 가슴이 먹먹해지고 말았습니다.

어느 사진보다도 더 애잔하게 느껴지는 빛바랜 편지 한 장.

그래. 엄마는 이 편지를 앨범에 간직하고 계셨지.

거기엔 빼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엄마, 나는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생각보다 신나는 일이 많아요.

모두들 내게 잘해주세요. 그러니 엄마도 잘 지내세요.

 

그 편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제가 쓴 것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 사정도 어려워져서 엄마와 우리 남매는 잠시 떨어져 지내야 했던 때입니다.

오빠는 큰댁으로, 나는 외삼촌댁으로 가야했죠.

물론 가기 싫었습니다.

엄마와 떨어지는 것도 싫었고, 외갓집에서 겪을 일들도 좀 겁이 났습니다.

그러나 싫다는 소리는 끝내 하지 않았습니다.

가뜩이나 힘든 엄마를 더 힘들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마침내 외삼촌 집에 내려가 남게 되던 날, 엄마는 약간의 용돈과 주소 적힌 쪽지를 쥐어주며 말했습니다.

정말 못 견디겠거든, 엄마한테 편지를 쓰라고요.

어서 날 데리러 오라고 쓰면 엄마가 곧 오겠다고요.

아마도 아이의 마음을 달래려고 했던 말이겠지만, 그 순간 저에겐 큰 힘이 되더군요.

문제는 그런 말을 써도 외숙모가 서운해하시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소심한 망설임을 눈치챈 엄마는 귓속말로 방법을 알려주셨죠.

글 대신 꽃을 그리라고요. 편지에 꽃이 그려져 있으면, 데리러 오겠다고요.

 

사람의 기억이란 참 놀랍습니다.

그런 짠한 기억을 다 잊고, 저는 눈앞의 삶에만 매달리며 살고 있었거든요.

결혼하고, 아이 낳고, 남편과 투닥대며...

그런데 또 그 편지를 보니 잊었던 기억이 가슴 찡하게 되살아나더란 말입니다.


편지엔 꽃이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진실을 알지요.

그 편지를 쓰며, 몇 번이나 꽃을 그릴까 말까 망설였다는 것을.

그러고도 끝내 꽃 한 송이 그리지 못하고 엄마를 안심케 할 뻔한 거짓말만 적어서 보냈다는 것을요.

어른이 되어 보니, 그 당시 엄마는 또 그 이별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더군요.

오죽하면 딸이 보낸 편지를 앨범 속에 간직하고 계셨을까요?

 

그날 이후 저는 늘 그 편지를 기억하며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불과 열한 살 때도, 대견하고 속깊은 딸이었던 내가, 이제 와서 엄마를 실망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했죠.

아이 둘 기르고, 맞벌이하며, 한동안은 시아버님도 모시며 살아온 30년 결혼 생활.

그 와중에 겁도 없이 일만 자꾸 벌이고 뒷감당은 내게 떠미는 남편.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요.

어떨 땐, 넌더리가 나서 애들도 나 몰라라 팽개치고 친정으로 달려간 적도 있습니다.

사는 게 너무 힘들다, 나 좀 받아달라 말할 사람이 엄마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끝내 그런 말을 하지는 못했죠.

열 살 때도 그리지 않은 꽃을 마흔 넘어 그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힘도 없는 친정 엄마를 찾아갔던 것은,

어린 시절 엄마의 약속에서 힘을 얻고 싶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내가 꽃만 그리면, 엄마가 데리러 올 거라는 말. 그 약속을 생각하면 힘이 났습니다.

그래. 꽃은, 언제라도 그릴 수 있다. 다만 지금은 때가 아닐 뿐.

 

그렇게 꽃그리기를 미루고 미루며 막막한 세월을 건너왔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나를 짓누르던 많은 문제가 세월 따라 하나 둘 저절로 가벼워지더군요.

초년의 빚도 갚았고, 자리도 잡았습니다.

아이들은 어느새 다 자라 각자 제 밥벌이를 하며 열심히 살고 있고요.

남편은 뒤늦게 철이 났습니다. 사람 귀한 줄을 알고, 돈 무서운 줄을 이제는 아네요.

밑이 빠진 것 같던 인생의 독에 비로소 뭔가가 채워지기 시작한 느낌이랄까요?

 

세월이 내게서 데려간 건 엄마였습니다.

3년 전 사고로 골절상을 입고 응급 수술을 받았는데, 그 후유증인지 갑자기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나아지길 기대했지만, 그 증세는 점점 심해져, 결국 집이 아닌 요양병원으로 모셨지요.

그곳에서 엄마는 2년 조금 넘게 계시다가, 작년 가을에 세상을 뜨셨습니다.

2년이라는 시간은, 충분히 고통스러웠음에도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집이 아닌 곳에서 낯선 사람들의 손에 몸을 맡기고는 두렷두렷 큰 눈을 굴리는 엄마를 지켜보며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바뀌곤 했죠.

엄마를 집으로 모셔와야겠다. 오빠보다는 딸인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기는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은, 작심하고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집에 가고 싶지? 여기 못 있겠지?

그러자 엄마는 고개를 저으시더군요.

좋아. 여기가 좋아. 집보다 더 좋아. 사람들이 잘 해줘.”

 

그 말을 듣고, 저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아 거짓말을 하는 엄마.

그런 엄마를 모른 척 병원에 남겨두고 돌아서는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부끄러웠습니다.

그 날, 저는 엄마의 귀에 대고 진심으로 말했습니다.

"엄마, 언제든 집에 가고 싶으면 말만 해. 그럼 내가 당장 모시러 올게."

엄마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시더군요.

하지만 돌아가시는 날까지도, 날 데려가 달라는 말씀은 안 하셨죠.

 

지금 제 앞에는 엄마의 가족 앨범이 놓여 있습니다.

나는 잘 지내니 걱정 말라는 편지 속의 말. 그 말은, 내가 할 때보다, 엄마에게서 들을 때 더 아팠습니다.

나는 비닐을 들추고 굳이 편지를 꺼내 가슴에 꼭 안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뭔가요?

무심코 보게 된, 편지의 뒷면은 저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거기엔 세상에나, 예쁜 꽃들이 가득 피어있었습니다.

, 기억은 또 한번 나를 속였나 봅니다.

앞면에는 차마 그리지 못한 꽃을 열한 살 아이는 뒷면에 그려 보냈던 겁니다.

그 편지를 받고 혼자 울었을 젊은 엄마의 눈물이 제 눈을 가득 채우네요.

 

어린 딸은 뒷장에 그려보낸 꽃을, 엄마는 세상 어디에다 몰래 그렸을까요?

마음 속 가득 피어나는 꽃들을 어디에다 끝까지 감추어 두었을까요?

 

엄마를 보내고 맞는 첫 봄.

이제 곧 세상엔 꽃이 만발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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