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다방으로 오세요! - 길을 막고 지나가는 사람에게라도 물어보고 싶은 당신의 고민을 들어드립니다!

졸혼의 타이밍 (22)
794
mrs****
2019-01-05
조회 26287
추천 6


저에게는 남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위로 누나 둘, 아래로 여동생 둘, 남자형제는 그 동생과 저뿐이지요.

나이도 딱 두 살 차이라, 어릴 때는 치고 받고 싸우면서도

참 정 있게 지냈죠.


그러다 각자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좀 거리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의가 상할 정도는 아니고, 초반에, 동서들끼리(제 아내와 제수씨) 잘 안 맞아서

이런저런 피곤한 일들이 좀 있었습니다.

워낙 기질이 안 맞아서 그런 것을, 우애를 위한답시고 자꾸 맞추려고 하면

더 나빠질 것 같더군요.

그래서 적당히 거리를 두며 살아왔습니다.

각자 효도 할 것 알아서 효도하고, 서로 잘 되길 바라며 쓸데없이 관심두지 않았지요.


그런데 가만 보면, 저나 남동생은 참 외모도 닮았고 성격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고

능력이나 운도 비슷한 것 같은데

결혼생활의 모습은 너무나 다른 것 같았습니다.


저희 부부는 지난 삼십 몇 년을 정말 많이도 싸우고 부딪혔습니다.

체질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고, 맞는 게 하나도 없는데다 서로 숙이고 드는 성격이 아니다보니

서로 내가 맞다고 싸우는 거죠.

그러다 보니, 애틋하고 다정하던 세월은 온데 간데 없고

서로 미운정이 90프로 이상 들어버려서, 어떨 때는 이혼 안 하고 산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맹세컨대, 저는 이혼만은 고려해본 적이 없습니다.

바람을 피거나 서로한테 못할 짓 하는 것도 아니니, 그냥 참고 맞춰가며 한 세상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아내도 아마 비슷한 생각일 겁니다.


우리 부부와 달리 남동생 부부는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보기엔 제수씨가 잘 받아주는 것 같았습니다.

부부 속사정이야 형제도 모르는 것이겠지만,

좀 못 마땅한 게 있어도, 불편한 게 있어도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인 것 같아

제가 고맙게 생각했지요.


그런데 동생 내외가 결혼 35주년을 맞는 작년에

생각지도 못한, 날벼락 같은 불운이 닥쳐왔습니다.

제 동생이 난데없는 암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그나마 너무 늦게 전에 알게 되어 항암치료도 받고 수술도 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제가 알게 된 것은 이미 항암치료를 시작한 뒤였고, 수술 날짜가 코앞일 때였지요.

눈앞이 캄캄했지만, 그래도 형이니까 의연한 모습 보이려고 무지 애썼습니다.

야무지고 믿음직한 제수씨가 있으니까 잘 될 거라 믿으며서요.


그런데 최근에, 암소식보다 더 기막힌 얘기를 듣고 말았습니다.

암은 그럭저럭 다스려지고 있는 모양인데,

두 사람이 같이 못 살겠다고, 제수씨가 따로 거처를 구해 나갔다는 겁니다.

수술 받고 육개월도 못 된 환자를 두고, 아내가 집을 나가다니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도, 평소에 견원지간처럼 사이가 나빴다거나, 둘 중 한 사람 행실이 나빴으면 모를까...


동생한테 듣기로는, 제수씨가 못 살겠다 한답니다.

평생 참고 살아왔고, 그렇잖아도 졸혼을 생각하던 참이었다네요.

수술받고 급한대로 요양하는 것까지 돌봤으니, 원래 생각대로 각자 공간에서 살고 싶다 한다네요.

그래서 한번씩 병원에 검진 가는 것도 제수씨가 아닌

시집간 딸이 거든다네요.

그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은데

그집 애들의 반응은, 엄마의 뜻을 존중한다고 하니...


제가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더 물어봐도 시원한 답은 안 들립니다.

제 동생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얼마나 했기에, 중병이 든 몸으로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걸까요.

아니할 말로, 평생을 개와 고양이 처럼 다투어온 우리 부부도,

애틋한 마음 하나 없지만, 그저 미운 정으로

당장 암이 걸렸다하면 차마 모른체는 못하겠습니다.

암이라는 말 듣는 그 순간부터 눈물나게 불쌍하고,

지금껏 살갑게 잘해주지 못한 게 미안할 것 같은데....


지금 동생은 원래 살던 집에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딸들이 자주 들른다는 것을 보니, 딸들하고는 사이가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해가 또 안 되는 것이 만약 우리집에 그런 일이 있고

제 아내가 병든 저를 두고 졸혼을 말한다면

우리 집 자식들은 그렇게 순순히 뜻을 존중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엄마는 아빠에게, 아빠는 엄마에게 인간적인 의리를 지키라고 할 것 같습니다.

저희들이 골치아파질 것이 부담스러워서라도, 졸혼을 유보하라고 했을 것 같네요.


동생도 엄연히 남이니, 남의 부부 일에 뭐라고 할 말이 없기는 합니다만

정든 아내가 살뜰히 돌봐주면 떨치고 일어날 병을

혼자서 키우게 되는 거 아닌가 싶으니 답답합니다.


졸혼도 좋고 이혼도 좋지만,

그것도 명분과 타이밍이 있는 것 아닌가요?

댓글 22

댓글 쓰기
0/2000 byte
이전글
효자와 결혼해서 왕따가 되었어요 (21)
다음글
아버지의 진심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