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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와 결혼해서 왕따가 되었어요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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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s****
2018-12-28
조회 22458
추천 4


남편이 개천의 용입니다.

이 한 마디로 많은 것이 설명되겠지요.

 

그러나 보통의 개천 용보다, 저희 집 상황은 더 나쁩니다.

시부모님이 능력이 없으실 뿐 아니라, 현실감각, 경제 관념도 별로 없으세요.

아들 하나는 잘 되어 있으니 이제 아무 걱정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그리고 물론 남편은 효자입니다.

효자와 결혼해서 저는 처음 몇 년을 혼자 속 끓였습니다.

남편이 부모님 생활비 책임지고, 형제들은 그걸 당연히 여기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죠.

물론 누가 알아달라고 자식 노릇하는 거 아니고, 어느 자식이든 형편이 되는 자식이

나서야 하는 거 아는데

제가 힘들었던 것은 남편 본인의 맹목적인 태도입니다.

저도 그렇지만 남편도 검소하고, 실속파라, 천원, 만원도 함부로 안 쓰거든요.

그런데 부모님 말씀이라면 남편이 갑자기 사람이 달라지는 겁니다.

물정 모르는 사람처럼 돈아까울 게 전혀 없는 겁니다.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느냐는 말 한 마디로 제 입을 막고 말이죠.

 

그러나 언제까지 입 다물고 있을 수는 없더군요.

반복되는 상황에 지칠대로 지쳤고, 또 이대로 가다가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다 싶어

제가 차츰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생활비도 드리는데, 꼭 해외여행까지, 병원비까지 우리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되느냐,

형제들이 고마워하는 게 아니라, 당연하게 생각하고 나중에는 왜 그것밖에 못 하느냐고 한다.

아버님이 지금 이 상황에 왜 차를 바꾸셔야 하며,

그 얘기를 왜 다른 자식들한테는 꺼내지도 못 하시는 건가.

 

그런 말을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그 결과가 뭔지 아세요?

저만 빼고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며 할 거 다하는 겁니다.

전에는 그나마 통보라도 해주더니, 이젠 저만 왕따를 시키는 거죠.

그리고 저한테 하는 말이,

네가 며느리로서 한 일이 뭐가 있느냐는 겁니다.

누구 며느리처럼 철철이 보약을 지어오길 하나, 크루즈 여행을 시켜주나,

가전제품을 바꿔주길 하느냐.

당연히 전 안 했죠. 제가 안 해도 남편이 다 하는 걸요.

제가 뭐하러 제 피같은 월급을 들여 남편보다 먼저 지갑을 열겠어요?

솔직히 저, 시부모님에게 살갑게 못 하고, 마음에 정도 없습니다.

가족 같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를 소외시키고 아들에게 계속 요구하고 기대하시니까요.

그래도 아들은 부모님에 대한 정이 있겠지만

며느리인 저는, 정이 아닌 부담과 답답함만 느낍니다.

자식을 물질로만 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남편도 불쌍합니다.

키워지길, 그런 효자로 키워졌고, 다른 선택이 없는 학창시절을 보냈어요.

결혼에 대한 생각도 아마 저와 달랐던 거 같아요.

한 가정을 꾸리고 독립한다는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결혼에 대한 관념이 나와 다른 사람,

효도에 대한 관념도 나와 다른 사람.

그런 사람과 웬만하면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이미 결혼했다면, 약게 굴었어야 하나 봅니다.

그런 맹목적이고 한맺힌 효심은 누가 말린다고 바뀌는 게 아닌데

저는 말로 설득해서 바꾸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왕따가 되고, 나쁜며느리, 나쁜마누라가 된 거죠.

 

이제 나이를 좀 먹고 보니, 머리가 돌아갑니다.

애초에, 사람을 고쳐볼 생각하지 말고

그냥 이대로의 사람과 평생 살아갈지 말지를 결정했어야 합니다.

이혼하겠으면 하고, 그게 아니라면,

그냥 그 사람이 하는대로 내버려두고, 차라리 손발을 맞춰주는 편이

나에게 이로웠을 것 같습니다.

그랬더라면 남편하고 이렇게 관계가 나빠지지 않고

나쁜 사람 소리도 안 듣고,

적어도 돈 쓰는 데 생색이라도 났겠죠.

 

제가 원래 돈돈 하는 사람이 정말 아닌데,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것도 내 남편과, 가족이라는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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