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다방으로 오세요! - 길을 막고 지나가는 사람에게라도 물어보고 싶은 당신의 고민을 들어드립니다!

마음에서 남편을 잠시 내려놓으니, 날아갈 것 같은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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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s****
2018-12-04
조회 1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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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부부싸움이 누구 한 사람의 잘못으로 나는 줄 알았더랬습니다.

술 문제라든지, 도박이라든지, 혹은 외도나 거짓말 같은 것 때문에...

그러나 결혼해 살아보니, 그런 일이 아니라도 일상에서 부딪힐 일이 많더군요.

 

남편은 아마, 제가 세심하지 못해서 싸움이 난다고 할 겁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말하죠.

남편 성격이 하도 예민해서, 일상이 지뢰밭처럼 느껴진다고요.

누구 말이 맞는지는 따져서 뭐하겠어요.

어느 부부나 그러한 기질적 차이 때문에 싸우고 산다 하니

우리도 남들만큼은 싸우며 살아가야지요.

 

문제는 싸움의 마무리입니다.

사소한 문제로 부부싸움을 했으면, 하루 이틀 안에, 적어도 사흘 안에는

원상태로 복귀가 되어야 하지 않나요?

꼭 누가 정식으로 사과하지 않아도, 둘 중 하나가 지나가다 한 마디 슬쩍

붙임으로써, 냉기가 녹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집 남자는 그게 전혀 안 됩니다.

몇날 몇일을 꽁해서 말을 안 합니다.

그냥 놔두면 아마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그 상태일 겁니다.

저는 도저히 그렇게는 살 수 없는 성격이라,

잘잘못을 떠나, 항상 먼저 말을 걸거나 웃을 일을 만들죠.

사과를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애들 얘기를 하면서 말을 붙인다든지,

별식 같은 걸 만들어 먹자고 내놓는다든지

같이 늘 보는 티비 예능 프로 같은 거 틀고, 와서 보라고 부른다든지요.

물론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지만,

저는 냉랭한 채로는 하루를 견디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차라리 그렇게 합니다.

애들한테도, 부모가 서로 말 안하는 거 보여주기 싫고요.

 

그런데 저의 그런 노력이 사람을 아주 버려놓는 길이더라고요.

연차가 더할수록, 남편은 점점 더 고자세가 되어 가는 겁니다.

제가 먼저 말 걸고,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그 마저 어떨 때는 몇 번이나 무시하고 묵살해버리는 겁니다.

 

제 주위에서도, 저더러 남편 길을 잘못 들였다고 하더군요.

어떻게 매번 한쪽만 노력해서 화해하느냐고요.

더 늦기 전에 고치라고 하는 겁니다.

너도 몇일씩 입 닫고 묵언수행해보라고요.

그러면 남편이 더 답답해서, 뭔가 변화를 보일 거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저도, 남편처럼 싸우면 말 안 하기로 했습니다.

남편 버릇을 고쳐보겠다는 생각 절반에, 이제는 나도 아쉬울 게 없다는 생각 절반이죠.

따끈따끈한 애정이 있는 신혼도 아니고, 애들이 신경쓰이는 나이도 지나갔으니까요.

이런 식으로 남편 버릇을 고치긴 어렵다 해도,

적어도 약간의 반성은 하게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내가 움직이지 않으니 좀처럼 화해가 안 되는구나, 하고 느끼길 바랬죠.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니, 얼마나 홀가분하던지요.

아주 세상 편하더군요.

남편의 나쁜 점을 고쳐 더 좋은 관계가 되고 싶었던 마음은 옅어지고

점점 더 제 자신에게 집중했습니다.

내가 왜 진작 이렇게 쿨하게 나가지 못했나 후회가 될 정도로 편하더라고요.

그리고 그 편한 기분 또한, 잠시더군요.

시간이 더 흐르니, 이젠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우리의 뇌는 바보라더니, 거죽으로나마 웃으며 일상의 스킨쉽을 유지할 때는

남편과 내 사이가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남편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입을 닫고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니,

뇌도 문을 닫고 남편을 쫓아내버리네요.

이런 과정을 거쳐, 쇼윈도 부부니 무늬만 부부니 하는 단계에

이르는 걸까요?

 

남편도 물론 제가 변했다는 걸 알 겁니다.

속으로는 당황스러워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타고난 성격상, 축적된 습관상

먼저 다가오지는 못하겠죠.

그런데 만일 남편이 변하는 모습을 조금 보인다해도,

저는 이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네요.

자기 중심적이고 까다로운 사람한테 맞추면서 살아온 게

다시 하라면 도저히 못할 피곤한 일로 느껴집니다.

결국 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저런 이유로, 재미없게 사는 중년부부들이 걸어가는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네요.

이렇게 삭막한 채로 수십 년을 더 가야한다는 게 기막히기도 하지만

안 될 건 뭔가 싶은 무감각한 생각도 듭니다.

 

제 나이 이제 곧 오십

지금이 딱 그럴 시기인가요?

아니면 한때의 권태기(?) 같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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