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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닮은 부자 싸움에 내 등만 터지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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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s****
2018-08-10
조회 15804
추천 7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던가요?

때로는 힘없는 새우를 믿고 고래처럼 날뛰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음 졸이며 받아주고, 말려주는 누군가가 있기에 양쪽의 고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내달리는 것이지요.

우리 곁의 누가 고래이고 새우인지 한번 돌아봐야겠습니다.

고래는 진짜 고래가 맞는지, 새우는 어쩌다 새우가 되었는지....

 


아들과 남편은 치킨게임중?


이른 아침, 혼자 잠을 깬 침대에 아홉 살 늦둥이 딸아이가 살며시 기어듭니다.

아기처럼 제 품을 파고들기에, 더운 걸 참고 끌어안았죠.

그렇게 이마와 볼을 맞댄 채, 딸아이가 묻습니다.

오늘 아빠 오시지?”

그럼. 금요일이잖아.”

흐음...”

흐음? 아빠 오신다는데 흐음이 뭐야?”

그냥, 아무것도 아니야.”

 

딸은 갑자기 더워졌다는 듯, 제 가슴을 떠밀고 제 방으로 뛰어갑니다.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중학생, 초등학생 남매를 둔 저희 부부는 벌써 4년째 주말가족생활중입니다.

애들 아빠는 금요일 밤에 귀가했다가 일요일에 일터로 돌아가지요.

한때는 금요일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손님 치르듯 좀 번거롭긴 해도 가족이 모이는 게 더없이 좋았으니까요.

목요일 오후쯤 되면 저는 대충이나마 집안 정리를 하고, 장도 봅니다.

금요일 아침에 눈을 뜨면서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죠.

아 오늘은 애들 아빠가 오는 날이구나.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금요일이 버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목요일 오후쯤이면 저는 벌써 멍해져서 일이 손에 안 잡힙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 꼬투리가 되어 한바탕 난리굿을 겪게 될까?

두 사람을 떼어놓을 방법은 없을까?

 

문제의 두 사람은 바로 남편과 아들입니다.

성격도 외모도 판박이인 두 사람은, 어찌 된 일인지 서로를 참아내지 못하고 마주치기가 무섭게 으르렁거립니다.

사춘기의 아들은 별 것도 아닌 일에 예민해져서 끝까지 어깃장을 놓기 일쑤입니다.

거기다 아빠는 맞불을 놓듯, 조롱과 폭언, 악담을 퍼붓습니다.

네가 그렇지, 별 수 있니? 너 같은 놈한테는 학원비 아니라 밥값도 아깝다.

또 시작이네. 당장 집에서 나가.

물론 그런다고 눈 하나 깜짝하는 아들도 아니지만요.

 

그런데 저는 솔직히 아들보다 남편이 더 야속합니다.

사춘기니까 그러려니 이해해줄 수는 없을까요?

그 비위를 매일 맞추며 사는 저도 있는데 일주일에 한번 손님처럼 만나는 아빠가 왜 더 진절머리를 내는지요.

그러다 애가 나쁜 생각이라도 하면 어떡하느냐고 하면, 남편은 콧방귀를 뀝니다.

그럴 용기조차 없는 녀석이라고 막말을 하면서요.

 

그러던 지난 7, 작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같이 외식을 하자고 집을 나서던 차에 또 무슨 사소한 일로 아들이 짜증을 내며 늑장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살살 달래서 데리고 가려는데, 남편이 그새를 못 참고 폭발하고 말았죠.

저 녀석 빼고 우리끼리 가자고 제 등을 떠미는 겁니다.

그 말을 안 들으면 더 큰 난리가 날 것 같아, 일단 딸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습니다.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외식을 얼른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들이 전화가 왔습니다.

어느 가게에 들러 무슨 샌드위치 사다달라기에 알았다고 했죠.

그런데 곁에서 듣고 있던 남편이 또 불같이 화를 내며, 배고프면 네 발로 나가 사다 먹으라고 소리치는 겁니다.

거기까지만 해도, 우리집에선 일상다반사라 할 텐데,

전화를 끊어버리기 직전 아들의 말 한 마디가 제 귀에 꽂힙니다.

"알았어. 내가 그냥 죽어버리면 되지? 아빠한테 그렇게 전해."

 

그 순간부터 저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운전하는 남편의 어깨와 팔을 때리며 빨리 달리라고 소리쳤습니다.

주차장에 도착해서도 급한 마음에 5층까지 한달음에 뛰어올라갔습니다.

집에 들어서자 아들 방으로 뛰어들었고, 이방 저방 아들 이름을 부르며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베란다로 다가가게 되더군요.

떨리는 마음으로 발코니 너머의 화단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다행히도 화단에는 아무 일도 없더군요.

순간 뜨거운 눈물이 핑 도는 걸 느꼈습니다.

어쩌다 내가, 우리 네 식구가 여기까지 왔나 싶으니 가슴이 미어지는 겁니다.

 

결국 아들은 몇 분 뒤에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어이없게도 편의점 삼각 김밥을 사들고 온 겁니다.

거 보라며, 코웃음 치는 남편 옆에서 저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죠.

그때 어느 구석에서 숨죽이고 있었는지 모를 딸아이가 갑자기 튀어나와 소리치더군요.

"엄마, ! !"

 

계단을 급히 올라오다 스텝이 꼬였었는데, 그 때 정강이가 깨졌나봅니다.

죽네 마네 한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피를 본 건 결국 저였습니다.

그리고 그 피는 두 남자에게도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동안 그렇게 완강히 거부하던 심리상담을, 헛일하는 셈 치고 한번 받아보기로 마음을 바꾼 걸 보면 말입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지난 주, 우리는 상담센터에 다녀왔습니다.

오른쪽에 앉은 남편과 왼쪽에 앉은 아들을 번갈아 다독이며, 긴 설문과 상담을 마쳤지요.

어쨌거나 합심하여 노력한다는 사실이 저는 기뻤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참으로 뜻밖이었습니다.

예민 덩어리인 아들이, 실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편이라는 겁니다.

또래의 청소년에 비해서 딱히 위험한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네요.

남편 역시 의외의 결과를 받았습니다.

현재의 상황에 비교적 만족하고 있고, 스스로의 감정을 잘 통제하고 있다는 겁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제 상담결과였습니다.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정도의 우울증 상태랍니다.

장기간 해소되지 못한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원인인...

 

그 결과를 듣고, 저는 말할 수 없는 허탈감과 묘한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알고보니 남편과 아들은 단순하고도 멘탈이 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비명과 폭력은 그저 엄살이거나, 연극적인 자기표현에 불과했던 겁니다.

서로 꼭 닮은 자기들끼리는 그 사실을 은연중에 알고 있었을 테고요.

그런 줄도 모르고,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마음을 졸여온 저만 마음의 골병이 든 것이지요.

 

그 날 이후 두 남자는 기세가 좀 꺾였습니다.

본인들이 생각해도 민망한 결과였을 테지요.

오늘 밤이면 두 사람이 또 한 자리에 모이는데, 과연 얼마나 달라져 있을지 궁금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자리에 없을 겁니다.

둘이 지지고 볶든, 드잡이를 하든 관심을 끊고 저는 집을 벗어날 생각입니다.

제 자신보다는, 딸을 위해서입니다.

제가 이 지경이 됐을 때는, 딸의 어린 마음에도 상처가 많을 거란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를 닮아 표현을 잘 못하고, 숨죽여온 아이.

집안에 태풍이 몰아칠 때마다 어딘가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을 그 아이를 위해

오늘은 단둘이 어디로든 떠날 겁니다.

우리끼리 마음 편히, 천천히...

 

이게 우리 방식의 비명이란 걸, 목소리 큰 두 남자가 알기나 알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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