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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탄하게 자식 결혼시키는 분들 부럽습니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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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s****
2018-08-08
조회 14857
추천 3



14년 전 아내와 사별한 사람입니다.

대학생, 고등학생이던 남매와 함께 힘든 시간을 잘 이겨왔지요.

아내가 힘들게 다 키워놓고 간 자식들이라, 제가 한 일은 없습니다만

세상으로 나가는 자식들을 지켜보며 마음을 졸이는 것만으로도

홀로 부모 노릇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딸아이가 저는 어려웠습니다.

저도 나름 딸바보 소리 듣던 사람입니다만, 그것도 아내가 있을 때 이야기이지

책임지고 이끌어주기에는, 제가 너무 무지했지요.

딸의 결혼 적령기를 맞으면서는 더욱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너무 늦기 전에,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군요.

사람만 성실하면 허락할 생각으로, 그럼 어서 데려와 인사를 시켜라 했는데,

눈치가 영 이상한 겁니다.

알고보니, 남자 쪽 집안 부모님이 반대를 심하게 하는 모양입니다.

며느리감이 본인들 눈에 안 찬다는 뻔한 이유로...

 

무엇이 그렇게 마음에 안 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홀아비 밑에서 자랐다는 것이 문제인지, 풍족한 집안이 아니라 그러는 것인지요.

제가 보기엔 그 댁 아들도 별반 내세울 것이 없는 듯 하던데

그 부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제 생각 같아서는 그런 인연은 미련없이 접어버리는 게 맞지 싶습니다.

환영받고 시집가도, 쉽지 않은 것이 결혼생활인데

부모로부터 무시와 거부를 당하면서 어떻게 행복한 결혼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처음에는 남자가 무조건 여자의 말을 들을 것처럼 맹세를 하겠지만

세월이 지나다보면 감정이 식고, 원가족인 부모 쪽으로 마음이 기울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딸은, 그런 현실을 모르는 것인지, 단단히 정이 들어버린 것인지

끝까지 그 남자를 고집하며, 길이 아닌 길을 벌써 절반은 가버렸습니다.

저희끼리 약속을 하고 살림을 차렸습니다.

아비로서 참 부끄럽고, 말하기도 뭣한 일입니다만

그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엄마가 살아 있어서 딸과 조근조근 속 깊은 이야기를 좀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딸아이를 그저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기만 했을 뿐

속마음은 깊이 모르는 채로 키워왔습니다.

어디 가서 무시 당하지 않고, 남한테 폐끼치지 않기를

바랄 뿐, 이럴 땐 이렇게 해라 저럴 땐 저렇게 해라 가르쳐보지도 못했네요.

 

하지만 사람이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고 했는데

인륜지대사인 혼인을 이런 식으로 시작해서는 안 되지요.

더구나 남자도 아닌 여자가 자기를 함부로 내돌리면

남도 저를 함부로 대한다는 걸 왜 모를까요?

 

하지만 저는 딸을 말리지도, 설득하지도 못했고,

그야말로 두고만 보는 심정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참으로 자존심 상하고,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지만

남자쪽 부모가 부디 마음을 돌이켜, 우리 딸을 받아주기를 바랄 뿐...

 

겉으로는 모르는 척, 아무 개입도 간섭도 하지 않고 거리를 두어 왔습니다.

내 딸이 아직 그 집안 며느리가 아니니, 나도 그 집 아들을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지는 못했지요.

저러다 애정이 식고 변덕이 나서 둘이 헤어진다 해도

할 수 없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세상에, 굳이 한 사람과의 첫 인연에 목매어

자기 인생을 저당잡힐 필요가 있나요.

 

그런데 딸은 어째 점점 더 위험한 벼랑길로 저 자신을 모는 것 같네요.

부모 허락을 기다리며- 그런다고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듯, 허락이 떨어질 리 만무하건만

2년 세월을 채웠다며 이제는 포기한답니다.

만나뵙고자, 진심을 전하고자 노력하는 것도 중단하고

저희끼리 식도 올리고 법적인 신고 절차도 밟겠다 합니다.

그뿐이면, 저도 절반은 각오하고 있던 터라, 놀라지도 않겠습니다만

문제는, 주저없이 2세도 낳을 작정이더라는 겁니다.

 

아빠로서 저는 걱정이 됩니다.

이혼이 흠이 아닌 세상, 어떠한 경험도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과정일 뿐이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만 자식은 다르잖습니까

제가 이렇게 외롭고 고단한 인생을 살아온 것도 자식 때문이요.

자식이 가장 큰 보람이자 짐인데,

이렇게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상황에서 부모가 된다는 걸 지지해줘도 될까요?

 

모든 것이 제 운명이다 생각하지만,

사람이 애초에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걸어가놓고

운명이 잘 풀려가길 기대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만의 하나, 둘이 마음이 어긋나서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면

고스란히 저의 딸만 큰 상처와 부담을 질 것 아닙니까.

 

지금까지 멀리서나마 지켜봐온 바, 사윗감이 그리 믿음이 가지는 않기에 하는 말입니다.

에초에 나쁜 선입관이 생겨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얼마나 못났으면, 부모한테 그리 휘둘리고, 부모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할까요?

내 딸에게 아픔을 준 녀석이라 그런지 저는 믿음이 안 갑니다.

 

어쩌면 제 자신부터가 이 결혼에 믿음을 잃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순탄하게 자식 결혼 시키는 분들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그런 복을 못 타고 났다면, 머리 맞대고 상의할 애들 엄마라도 있었으면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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