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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우리 부부에게 빠져있는 단 한 가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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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s****
2018-05-18
조회 29143
추천 12

 

만물이 짝을 찾아 노래하고 날갯짓하는 이 계절.

우리네 인생도 실은 그렇게 기쁜 봄을 지나 여기 이곳까지 왔을 테지요.

세월은 흐르고 사람은 속절없이 늙어가지만 남편과 아내의 시간은 언제나 청춘입니다.

눈길 머무는 곳에 새순이 돋고, 손길 머무는 곳에 꽃이 피는 영원한 봄입니다.

  

멀쩡한 우리 부부에게 빠져 있는 단 한 가지!  

 

지난 밤의 일입니다.

시각은 자정 무렵, 딸아이는 잠자리에 들고 남편은 일이 많아 아직 귀가하지 않은 상황이었죠.

저는 습관처럼 티비를 틀고, 소리는 낮춘 채, 별 기대 없이, 채널을 돌려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경우 대개 저의 눈길을 붙잡는 것은, 클래식 영화나, 교양 다큐멘터리.

하지만 어제는 전혀 엉뚱한 예능 프로그램에 붙들리고 말았죠.

이삼십대 꽃미남 꽃미녀들의 짝짓기프로그램. 사십대의 제 나이를 잊고 한참을 몰입해서 봤네요.

 

하긴 예전에 모방송사의 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본 적이 있긴 합니다.

남편한테도 전도를 하여, 한동안 둘이 같이 심야주전부리를 하며 열혈 시청했었죠.

그 때 우리 나이가 이미 삼십대 중반이었고 운명의 짝을 궁금해 할 일도 더 이상 없었지만,

미혼 남녀의 화살표 전쟁이 그렇게 재미날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남편하고 같이 봐서 더 재미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넷 중 어느 여자가 맘에 들어?’

없어! 다 고만고만해.’

거짓말. 저기 저 여자, 딱 봐도 당신 타입이네.’

어딜 봐서? 차라리 여자 3호가 낫다.’

, 그래?’

 

하지만 그 프로그램은 얼마 뒤 종영이 되었고, 우리 부부도 어느새 나이를 이만큼 먹어버렸습니다.

서른 몇 살과 마흔 몇 살은 이렇게나 다른 걸까요?

이제는 젊은이들 웃고 떠드는 모습이 나와는 무관하게 느껴지고,

선남 선녀를 보면 나 자신이 아닌 딸아이를 생각하게 되죠.

우리 딸은 나중에 어떤 타입이 될까? 우리 딸의 짝으로 저런 청년은 어떨까?

 

하지만 우연찮게 짝짓기 프로그램을 다시 보게 된 어젯밤,

저는 제 마음의 크나큰 동요에 놀라고 말았습니다.

예전에는 몰입해서 재미나게 봤다면, 이번엔 가슴 한켠이 싸하도록 부러운 겁니다.

그들의 젊음이 부럽고, 그들 앞에 놓여있는 창창한 미래가 부러웠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시작하는 연인들의 모습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한 공간에 지내며, 상대방의 눈빛 하나, 한숨 한 번에 천국과 지옥을 맛보는 남녀.

그들의 탄성 넘치는 밀당에 저는 몰두하다 못해, 급기야 눈물을 찍어내고 말았네요.

 

주책없는 눈물의 이유는 서글픔이었습니다.

그들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우리 부부의 모습에 가눌 수 없는 슬픔마저 느껴졌습니다.

남편과 마지막으로 눈빛을 교환한 게 언제였던가?

스치는 살결에 촉각을 곤두세워본 게 언제였던가.

남편을 의식해 옷을 고르고, 나한테 머무는 남편 시선을 느껴본 언제였던가?

 

그런 것 없이 산 지 몇 년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짝짓기 프로그램을 보며 열을 내던 시절이 그나마 우리에게 마지막 불씨가 남아있던 시절이었죠.

그 뒤로, 우리는 대부분의 중년부부가 걸어가는 길을 걸어왔습니다.

차츰 무감각해지며 멀어지는 길.

세월이 가져오는 부식과 소모에, 서로에게 저지른 몇 가지 잘못들,

그리고 쉼없이 우리를 갉아먹는 현실의 과제들까지...

그 버거운 일상 속에서 언젠가부터 우리는 각자의 방을 가지고 각자의 리듬대로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싫은 건 아니지만, 어여쁜 구석도 모르겠는,

그래서 밀어내지도 끌어당기지도 않고 빙빙 겉도는...

그렇게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섹스리스, 터치리스의 길로 접어들었고

이제 그 얼음같은 벽을 깨자면, 누군가가 총대 메고 먼저 나서야 할 판입니다.

 

하지만 둘 중 누구도 나서지 않고 있죠.

꼭 자존심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실 불편할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접촉 없이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세상 만고에 편한 일이기도 합니다.

물론 가끔 스스로 묻게 되기는 합니다.

이대로 건조하게 살아가도 되는 걸까?

하지만 그에 대한 답은, ‘안 될 게 뭐야?’입니다.

남편이 저렇게 잘 견디는데 내가 왜 못 견뎌?

내가 무슨 밝히는 사람도 아니고, 이렇게 세상 끝까지 간대도 문제 없어.

 

실은, 남편의 생각을 전혀 모른다는 게 문제입니다.

남편은 정말 괜찮은 걸까요?

남편의 속마음을 궁금해하기 시작하면 머리가 아파옵니다.

어쩌면 밖에 애인이라도 있는 걸까?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몸이 예전같지 않아 일부러 나를 멀리하는 걸까?

그렇다면 그건 너무 안 됐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내가 먼저 다가와주길 바라는 걸까?

정말 그런 걸까?

 

그런 생각 끝에 눈물이 솟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눈물이 마르기 전에 남편이 현관에 들어선 거죠.

그 바람에 저는 생전 안 하던 짓을 하고 말았습니다.

남편을 꼭 안고, 한참을 놔주지 않은 겁니다.

남편은 저를 목에 매단 채 가방을 던지고, 양복 저고리를 벗어던졌습니다.

그러나 눈물의 이유는 굳이 묻지 않더군요.

 

그리하여 간밤에 우리는 실로 몇 년 만에 한 침대를 썼습니다.

내 작은 돌발행동 하나가 우리를 거기까지 데려갔다니 몇 년의 냉랭하던 세월이 기막힐 뿐입니다.

그리고 정말 기막히게 좋았던 부분은 속을 터놓고 대화를 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남편도 나와 같은 마음임을 알았습니다.

남편은 저에게 다시 방을 합치자고 하더군요.

저는 물론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래놓고, 오늘 저는 웃지 못할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편한 생활을 접고 다시 합치는 게 맞나?

여러모로 신경 쓰이고 불편할 텐데?

도로 멀어질 땐 상처가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하지만 거듭 생각해도 정답은 예스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하루 제 기분이 구름 위를 걷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아침부터 괜히 짜증내는 사춘기 딸아이를 저는 웃으며 안아줄 수 있었습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욕실에서 요란하게 콧노래를 부르더니, 식탁에 앉아서는 친정 식구들 소식을 자상하게 묻습니다.

 

이렇게도 살 수 있었는데, 우리는 왜 그렇게 살아왔을까요?

멀쩡한 우리 부부에게 빠져 있던 단 한 가지.

그것 없이 산다는 것이 결코 편한 삶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마음으로 깨달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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