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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정에 목말라, 애먼 딸에게 눈을 흘겼던 엄마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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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s****
2017-07-14
조회 17272
추천 12

 

자식이 여럿이라도 그 중 유독 부모에게 잘하는 자식이 있습니다.

효심이 남달라서, 천성이 착해서일 수도 있지만,

때론 비틀리고 억눌린 마음이 원인일 때도 있더군요.

이제라도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늦었지만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하지만 부모님은 끝내 말씀이 없으십니다.

그 침묵의 의미는 자식이 스스로 헤아려야겠지요.

  

  

누구에게나 유독 듣기 싫은 소리가 있겠지요?

제 경우에는 냉정하다, 쌀쌀맞다는 말이 그렇습니다.

느리다거나 촌스럽다는 말을 들으면 내가 좀 그런가, 하고 마는데 사람이 차다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뜨끔합니다.

그 말만은 듣지 않으려고 제 그릇 크기보다 더 착한 척, 따뜻한 척 노력하며 살고 있다는 반증이겠지요.

 

제게 그런 두려움을 심어준 사람은 다름 아닌 엄마였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저는 엄마에게서 그런 타박을 들었습니다.

쌀쌀맞은 것, 냉정한 것, 저러니 정이 안 가지...

그렇게 말할 때의 엄마는 정말로 몸서리가 난다는 듯 치를 떨곤 하셨죠.

그러니 어린 마음에 저는 제가 정말 차갑고 못된 아이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며 억울한 생각도 들더군요.

동생들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엄마에게 회초리를 맞는데,

저는 그저 공기놀이를 하거나 밥숟가락을 뜨다가 별안간 엄마의 눈총을 받아야 했습니다.

저건 도대체 정을 다실 줄을 몰라...

그럴 때마다 부당하다고 느끼긴 했지만, 낳아준 엄마가 그렇게 단언하니 서서히 세뇌가 되어 가더군요.

나는 차가운 사람이다. 친구들은 그런 사실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마 어느 남자한테서도 사랑을 받기는 힘들 거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요?

남편이 제게 적극적으로 다가왔을 때, 저는 그게 너무 고맙고 신기했습니다.

엄마의 예언과는 달리 꾸준히 정을 나눈 끝에 결혼에 골인하여 남들과 다를 바 없는 가정을 꾸려가고 있지요.

그런 고마운 남편에게 가끔 저는 묻곤 합니다.

여보 내가 좀 찬 편인가?’

그럼 남편은 진담 반 농담 반 한결같은 대답을 해줍니다.

찰 땐 얼음같고 뜨거울 땐 불 같고, 대개는 뜨듯 미지근하고 뭐 그렇지. 사람이 다 그런 거 아닌가?’


처음 듣는 대답도 아닌데 매번 그 말에 안심하는 제 자신을 보며,

어떨 때는 스스로 측은한 생각이 듭니다.

나이가 마흔인데도 여전히 어린 시절 엄마의 모진 말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

그리고 남편이 아무리 안심을 시켜줘도 제 마음 밑바닥에 새겨진 열등감은 지워지지 않을 것임을 아니까요.

결자해지라는 말처럼, 그 상처는 엄마가 어루만져줘야 하는 건데,

이제 와서 그런 말을 꺼내어 연로하신 엄마를 괴롭힐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그저 현재의 엄마와 여느 모녀관계처럼 허물없이 잘 지내는 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진 않았지요.

두 여동생들과 엄마는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관계입니다.

하지만 엄마와 저는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거리감 같은 게 느껴졌죠.

제 마음에 상처가 그 원인인지, 아니면 엄마가 아직도 저를 차다고 느끼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냉랭한 악순환이 계속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끈질긴 냉기가 가시기 시작한 건 아이러니컬하게도 3년 전의 불운한 사건 이후였습니다.

엄마가 계단에서 실족하여 골반뼈를 다치시는 바람에 수술을 받게 되셨지요.

그 한 가지 일만으로도 충격이었는데, 입원 중에 모르고 있던 지병까지 발견하여

근 삼년을 병마와 싸우셔야 했습니다.

누군가가 병원수발도 들고, 통원치료도 모시고 다녀야 했지요.

그런데 그 일을 자연히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맏딸이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제가 자청한 면도 있습니다.

막연하게나마 저는 알았던 것 같습니다.

이 불행한 사고가 저에게는 기회라는 것을요.

엄마에게 평생 못 드린 따뜻함을 안겨드리고, 엄마의 고정된 생각을 뿌리째 바꿔놓을 기회 말입니다.

 

저는 그 기회를 붙잡았고 나름 최선을 다했습니다.

비록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엄마 마음만은 편케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저한테 투정도 부리시고 짜증도 내시도록 했습니다.

나이 사십에 처음으로 애교도 부리고 재롱도 떨었습니다.

엄마를 자꾸 만지고, 등을 쓸고, 볼을 비벼댔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엄마의 몸은 이제 아무도 만져주지 않는 몸이잖아요.

그렇다면 지난 사십년치를 몰아서 쌀쌀한 맏딸이 폭풍 스킨십을 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이따금 엄마의 눈치를 살피곤 했습니다.

이제 나를 좀 달리 봐주시나?

그러나 그 답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습니다.

도무지 정이 안 간다던 딸에게 온몸을 맡기시고도 한 번도 그에 대해 무슨 말씀을 하시지는 않으시니까요.

엄마는 눈을 감고 저에게 모든 걸 맡기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저도 이제 그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든, 제 마음에 엄마가 가깝게 느껴지면 그걸로 된 거라고요.

 

그런데 며칠 전, 엄마를 문안차 찾아온 이모에게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엄마가 유독 저한테만 모질게 대한다는 걸 이모도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심지어, 그러지좀 말라고 말리기도 했다네요.

하지만 소용없었답니다.

왜냐하면 엄마에겐 엄마 나름의 아픔이 있었기 때문이라는데...

그 아픔의 이유는 돌아가신 아버지였다네요.

점잖고 조용했던 아버지는, 유독 어머니에게만은 쌀쌀하셨답니다.

자식들은 몰랐던 부부지간의 속내를 이모는 알더군요.

자식을 넷이나 낳았지만 정을 주지는 않으셨다고 합니다.

엄마는 그 이유를 아버지와의 수준차이 때문으로 짐작하셨답니다.

많이 배우고, 매사에 빈틈 없는 사람이라 무식한 아내가 눈에 안 차는 거라고요.

그래서 아버지를 빼닮은 저를 그렇게 미워하셨다네요.

공부도 곧잘 하고 실수도 없는 것이 그렇게 미웠답니다.

 

그 얘기를 들으니 참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숙제를 하다가도 뒤돌아보면 엄마가 저를 쏘아보며, 아유 정 떨어져라, 저 쌀쌀맞은 등짝좀 봐라, 하셨었죠.

이제보니 그 말은 딸이 아닌 남편을 향한 비명이었습니다.

남편의 정에 목말라, 애먼 딸한테 눈을 흘겨야 했던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잘못인 줄 알면서, 비뚤게 가고 있는 줄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겠지요?

엄마의 비뚤어진 아픔이 제 마음도 비틀어놓았지만, 이제는 다 용서가 됩니다.

엄마의 마음 깊은 곳에는 미안함이 강물이 되어 흐르고 있을 걸로 믿을 수밖에요.


그걸 믿지 못한다면 저는 정말 차가운 아이가 돼버리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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