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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모는 시부모일 뿐, 애쓸수록 고달파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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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s****
2017-04-20
조회 17795
추천 7

 

세속적인 충고를 경멸할 수는 있어도, 이길 수는 없나 봅니다.

우리가 이상을 **아 먼 길을 도는 동안, 세속의 지혜는 지름길을 택합니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만신창이가 된 우리를 기다리지요.

십년의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니, 옛친구의 충고가 떠오르더라는 오늘의 손님.

여러분에게도 이런 씁쓸한 경험이 있으신지요?

    


시부모는 시부모일뿐..


 

  ‘시집가서 석 달 만 미친 척 하면 삼십년이 편하다.’

  십수 년 전, 결혼소식을 알리려고 만난 친구에게서 들은 말입니다.

  인터넷에 도는 우스개소리라는데, 그 말을 하는 친구의 얼굴엔 웃음기가 없었죠.

 “명심해. 시부모는 시부모야. 애쓸수록 너만 고달파져. 석 달만 눈 질끈 감고 미친 척 하는 거다!”

 

  겉으로는 웃었지만, 저는 그 말이 좀 거북했습니다.

  내 몸 고달파지는 게 두려워 사람 같지 않은 짓을 부러 연출한다니요.

  설혹, 그 충고를 따라서 효과를 본 사람이 제법 많다 하더라도, 나만은 그럴 수 없다 생각했습니다.

  중학생 때 엄마를 하늘나라에 먼저 보내고, 아버지 손에 자랐기에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컸던 저입니다.

  시부모님에 대해서도 딸처럼 사랑받고 싶다는 작은 욕심이 저는 있었던 겁니다.

 

  결국 저는 친구의 충고를 거꾸로 실천했습니다.

  삼년만 진심으로 노력하면, 삼십년간 화목할 수 있지 않을까?

  바쁜 직장생활 중에도 매일 전화를 드리고, 주말이면 두 분을 모시고 나들이를 가고,

  없는 솜씨에 생신상도 손수 차려 손님을 초대했었습니다.

  물론 저보다 더 잘 하는 며느리도 많겠지만, 중요한 건 제 마음에 아까울 게 없었다는 겁니다.

  고단한 줄도 몰랐고, 넘치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삼년의 시간이 지난 시점에, 저는 여전히 친구의 충고를 씁쓸하게 되새기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시부모는 시부모일 뿐이라는 말, 애쓸수록 고달파진다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습니다.

  고부관계는 모녀관계와 달랐습니다.

  딸이 애를 쓰면 부모는 안타까워하며 그 짐을 덜어주려 하겠지요.

  하지만 며느리가 애를 쓰면 시부모님은 그 며느리의 역량을 재평가하고, 더 많은 짐을 얹어줍니다.

  며느리가 도중에 등짐을 버거워하면, 시부모는 이렇게 말합니다. 왜 꾀를 피우느냐고요.

  거뜬히 잘해내는 건 당연한 것이 되고, 실수는 고의적인 것이 됩니다.

 

  스스로의 깜냥도 잊고, 제 그릇 사이즈를 넘는 노력을 쏟아부었음에도, 저 역시 감사보다는 핀잔을 많이 받았습니다.

  한 식구이기에 고마운 것도 미안한 것도 없다 하시는 분들이,

  며느리를 나무라실 때는 남보다 더 서운한 말씀을 하시더군요.

  어쩌다 흡족한 기분이 드셔도, 며느리가 아닌 아들 덕이더군요.

  내 아들이 번 돈이고, 아들 잘 키운 덕을 볼 뿐이라고요.

 

  제가 진정한 효부였다면, 어떠한 경우에도 억울하다 생각하지 않고 도리에만 충실했겠지요.

  하지만 애초에 저는 그런 큰 그릇은 못 되었던 모양입니다.

  차츰 서운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말 한 마디 못 하고 참아냈던 것은 기대치에 부응하고 싶은, 타고난 미련함 때문이었을까요?

 

  그런 미련곰탱이 짓을 끝낸 건, 결혼 십이년 차의 어느 날, 아주 사소한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우연히 어머님과 남편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제게는 충격이었습니다.

  애가 엄마 없이 자라 그런가, 어른 어려운 줄 모르고 말이 너무 많아.

  시어미 앞에서도 웬 수다가 그렇게 긴지, 머리가 다 아프다.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저와의 대화를 어머님이 그렇게 생각하시는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이들 얘기, 드라마 얘기, 어디서 들은 우스개소리 등, 저는 그야말로 효심차원에서,

  이 얘기 저 얘기, 길게 이어나간 것인데...

  그냥 싫으신 것도 아니고, 어미 없이 자라 어른 몰라본다고 흉을 보시다니요.

  어머님 마음에 늘 그런 편견이 깔려 있었다 생각하니, 마음이 얼어붙더군요.

 

  그날로 저는 모든 것을 마음에서 내려놓았습니다.

  며느리의 기본 도리는 하되, 마음을 쏟아붇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우선 어머님 앞에서 입부터 닫았습니다.

  이제 용건없는 전화도 안 드리고, 아이들 얘기도 묻는 말에 대답만 했습니다.

  그런데 참 희한하더군요.

  대화가 줄어드니, 관계의 무게가 1/10로 줄어드는 겁니다.

  저는 더 이상 시부모님 일로 전전긍긍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이제는 부모님이 제 기색을 살피시는 겁니다.

  말이 없어지니 며느리의 속을 모르겠고, 속을 모르니 눈치가 보이시는 모양이었습니다.

  부모님께 지청구를 듣는 일도 사라졌고 만나는 횟수도 줄어들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당연한 듯 며느리를 찾으실 일을, 이제는 두 분이 알아서 해결하시더군요.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몸이 너무 편했습니다.

  몸이 편한 것도 이토록 중요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나 참 못됐다 생각하면서도 저는 몇 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더 이상 아무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얼굴에 무표정의 가면을 쓰고 몇 년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가면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벗지 않으면, 저절로 벗겨지더군요.

  며칠 전, 아버님이 병원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을 때, 저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암선고를 받으시고도 두 분이 한동안 비밀로 하셨다는 것,

  어떻게든 두 분이 알아서 대처해보려고 애쓰셨다는 말씀에 얼굴이 뜨거웠습니다.

  제가 며칠 간병을 거들었다는 이유로, 연신 미안하다고 하시는 어머님을 보고도 저는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되면 자존감이 높아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변화가 있기까지 어머님이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받으셨을까요.

  어머니에게도 저는 이미 남 같은 며느리겠죠.

 

  다시금 옛친구의 충고를 생각해봅니다.

  석 달만 미친 척하라던 친구보다 제가 더 독한 며느리 아닐까요?

  내 마음의 상처를 핑계로,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냈으니 말입니다.

  다 받아주다가 돌연 얼굴을 바꾸었으니 말입니다.

  알고 보면 속이 허한 노인들일 뿐인데...




  등짐 벗은 듯 편히 지냈던 지난 몇 년의 무게가 한꺼번에 짓누르는 기분입니다.

 

  애초에 제가 원한 건 이런 고부관계가 아니었는데, 먼길을 돌고 돌아 결국 더 나쁜 며느리가 되고 만 제 마음이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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