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다방으로 오세요! - 길을 막고 지나가는 사람에게라도 물어보고 싶은 당신의 고민을 들어드립니다!

두 여인 사이에서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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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s****
2017-03-16
조회 18131
추천 8

 

빵이냐 자유냐? 조국이냐 애인이냐? 인생이냐 예술이냐?

그러나 그보다 더한 양자택일의 고문이 있다면, 그것은 어머니냐 아내냐?’가 아닐까요?

어머니를 택하자니 아내가 불행하고, 아내를 택하자니 어머니가 상처를 받습니다.

어머니에게 등돌리니 아내가 미워지고, 아내에게서 돌아서니 어머니가 원망스럽습니다.

양자택일의 칼날은 결국 그 칼자루를 쥔 남자를 둘로 쪼갤 뿐입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내가 물러서고 마는 참된 사랑을 조금만 더 일찍 발휘해보면 어떨까요? 어머니도 아내도...

    

어머니냐 아내냐?

두 여인 사이에서......

 

아내의 말대로 제 성격이 우유부단한 걸까요?

별별다방의 어느 사연에 달린 네티즌 댓글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혼해버려라, 호적에서 파버려라, 연락 끊고 이사 가 버려라...

그런 무서운 말들이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더군요.

설마 진담들은 아니겠지요. 자기들 일이라면 그렇게 쉽게 끊어버릴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 중에 유독 제 가슴에 꽂히듯 날아드는 한 마디 댓글이 있었습니다.

안 맞으면 안 보고 사는 게 정답이다!”

 

삼년 전, 제 아내가 했던 말이고, 그 얼마 뒤, 제 어머니가 마치 입이라도 맞춘 듯 똑같이 하셨던 말입니다.

그렇게 서로 뜻이 안 맞아 고통 받던 두 여인이 그 말 한 마디에는 완전히 의견일치를 보았다는 것이

슬프고도 기막힌 일이었죠.

그렇습니다. 부끄럽게도 제가 가장 사랑하는 두 여인이 서로를 별로 안 보고 싶어합니다.

원인이야 흔히들 말하는 고부갈등입니다만, 저희 집에만 해당되는 속사정도 있습니다.

어머니가 애초에 결혼을 반대하셨거든요.

저야 그저 사람이 좋아 결혼하려는 것이었지만, 어머니에게는 며느리에 대한 기대치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갑질을 하시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며느릿감과의 첫 만남을 뒷날로 미루시며 속내를 드러내셨죠.

양가 상견례에서도 표정이 안 좋으셨고요.

인사도 못 드리고 또 한 살을 먹는 게 답답했던 아내는 저에게 화도 내고, 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일이 우리의 행복한 미래를 위한 담금질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결국 사랑의 힘으로 승낙을 얻어냈고, 어머니 역시 비록 흔쾌한 기분은 아니셨더라도 물심양면 도와주셨습니다.

이제는 지난 일을 잊고 한 가족으로 서로를 받아들이면 된다고, 저는 생각했지요.

그러나 두 사람의 생각은 저와 달랐습니다.

아내는 어머니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마음에 품고 있더군요.

애초에 결혼을 반대하신 분이니까 며느리에게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까지 생각하는 듯 했습니다.

거리를 유지한 채, 서로에게 최소한의 예의만 갖추자는 생각이더군요.

그런데 또 어머니의 생각은 아내의 생각과 180도 달랐습니다.

시어머니가 마음을 비우고 결혼을 허락해주었으니 이제는 며느리가 노력할 차례라는 겁니다.

제가 잘 하면 나도 마음을 열고 귀여워하리라 생각하신 거죠.

 

둘 중 누구 말이 맞고, 누구 말이 틀린 건가요?

저는 두 말이 다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남자와 어렵게 맺어졌으면, 그 부모가 아무리 서운한 말씀을 하셨더라도,

이제부터는 잘보이려고 노력해 보는 게 맞지요.

그리고 어머니도, 남의 귀한 집 딸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일을 조금은 미안해하는 게 맞고요.

그러나 두 사람은 자기의 생각대로 밀고 나갔습니다.

어머니는 더 높은 기준을 적용해서 며느리의 점수를 깎아나갔고, 며느리는 점점 더 어머니의 존재를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고부 갈등이 없을 수가 없지요.

 

결국 아내가 선언하더군요. 어머니와는 안 만나고 싶다고요.

결혼을 반대하신 분이 기대가 너무 크답니다.

그러니 저한테 양자 택일을 하랍니다.

이혼하든지, 어머니와 끊고 살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요.

저는 그 상황이 도저히 용납이 안 되었습니다.

그렇잖아도 어머니와 자주 만나지도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아내를 몹시 대한 것도 아니고, 결혼 전에 반대한 것 때문에 이런 지경에 이르다니요.

그러나 아내는 완강했고, 시집에는 발걸음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어머니도 눈치를 채셨죠.

어느 날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

안 맞으면 안 보고 사는 게 맞다. 그러니 너도 오지 마라. 결혼했으면 마누라 편이 돼줘야지.”

 

써놓고 보니, 마치 솔로몬의 재판과 같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두 여인이 저를 사이에 두고 서로 자기 것이라 우기는 상황이 말입니다.

그런데 역시 포기를 한 사람은 저를 낳아주신 어머니였던 겁니다.

아들을 반으로 가를 수는 없으니 며느리, 네가 데려가 잘 살라고요.

 

그러나 저는 요즘도 명절이나 생신 때 어머니를 찾습니다.

때론 혼자서, 때론 아이만 데리고 찾아가죠.

실은 좀더 자주 찾아뵙고 싶은데, 혼자 터덜터덜 찾아뵈어 어머니 속을 더 상하게 하는 것 같아 그렇게도 못합니다.

 

안 보고 사니 평화가 찾아온 듯도 합니다.

아내는 이제 울며불며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를 토해내지 않습니다.

우리 부부의 일이 아닌, 어머니에 관한 일로, 서로 냉전을 치르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무엇보다 아내의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이제는 그녀가 나 때문에 불행해졌다고 자책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내는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제 마음의 변화가 얄궂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걱정과 죄송함은 오직 저만의 것이기에, 아내와는 거리감을 느낍니다.

원망스럽고, 때론 한심합니다.

이 상황에서 제가 정말 행복할 거라고 믿는다면, 아내는 바보입니다.

그 어느 아들도 어머니를 마음에서 몰아낼 수는 없는 겁니다.

자식을 낳아 저렇게 물고 빨며 키우는 여자가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는지...

 

제가 지금 아내에게 바라는 건 다시 어머니와 화합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렇게 되어 죄송한 마음, 유감스러운 마음을 가져달라는 겁니다.

실패를 실패로 인식하고, 먼 훗날 다시 회복할 수 있기를 희망해보자는 겁니다.

무엇보다, 남편인 저의 마음이 이토록 착잡하다는 것을 이해해달라는 겁니다.

이 마음을 몰라준다면, 아내가 아내로 느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남만도 못한 사람이지요.

제가 너무 옹졸하고, 우유부단한 건가요? 아내의 말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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