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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아들이자 뻔뻔한 남편. 언제 철들죠?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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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s****
2017-03-09
조회 32644
추천 13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아이를 낳아 키우다보면 그 노랫말의 의미를 저절로 실감하게 되지요.

쌔근쌔근 잠든 아기조차 다시 들여다보며 살피는 모정을 말입니다.

그러나 그 끈끈한 모정만으로 빗나가는 자식을 옳은 길로 인도할 수는 없나 봅니다.

진 자리에서 마른 자리로, 스스로 옮겨가도록 모른 척 기다려 줄 수 있는 어머니. 모정을 넘어서는 더 큰 사랑이 아닐까요?



못난 아들, 뻔뻔한 남편.

언제 철들죠?

  

  

누가 그러더군요. 참된 행복은 그것을 잃기 전에는 느끼지 못하는 법이라고.

그 말을 듣고 저는 씁쓸한 웃음을 웃었습니다.

행복한 일상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의 제 자신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바쁜 아침, 허둥지둥 출근준비를 해서 아이 손 붙잡고 남편과 함께 현관을 나서던 순간,

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내고 각자의 일터를 향해 헤어지며 남편과 응원의 눈웃음을 주고 받던 순간...

그런데 그때 저는 알고 있었어요.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를요.

 

어쩌면 저는 그때 벌써 예감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평범한 일상이 어느 순간 얼굴을 바꿔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을요.

제게 그런 불안을 심어준 사람은 다름아닌 남편이었습니다.

나이도 저보다 어린 데다,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불평불만만 쌓아가는 철없는 남편이니 말입니다.

결국 예감은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별 대수로운 일도 아닌 듯이 말을 꺼내더군요.

회사를 나와 버렸다고요.

그렇잖아도 마음이 떠 있었는데 회사의 사정도 부쩍 안 좋아졌다는 겁니다.

자의 반 타의 반 일이 그렇게 됐지만, 싫은 인간들 얼굴 안 봐도 된다니 속이 다 후련하다고 말하는 남편에게

저는 뭐라고 대꾸를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사실 그 순간 제 머릿속에 확실히 떠오른 생각은, 나라도 일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한동안은 일을 쉴까 생각한 적도 있었거든요.

얼마 되지도 않는 급여 받자고, 우는 아이 떼어놓고 출근하기가 하도 눈물겨워서요.

그 때 친정 엄마가 극구 말렸더랬습니다.

툭하면 이혼, 툭하면 실직인 세상에, 여자도 끝까지 벌어야 한다고요.

그 말 듣고 버티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쥐꼬리만큼이나마, 들어오는 돈이 있으니 굶지는 않겠지요.

저는 마음을 다잡고 남편을 격려했습니다.

이 일이 전화위복이 되도록 같이 노력하자고요.

 

그 뒤로 한동안 남편은 직장을 다닐 때보다 더 분주한 생활을 하더군요.

그동안 누리지 못한 것들을 마치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사람을 만나고, 여행을 다녀오고...

그러나 그 역시도 길게는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남편은 점점 더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출근할 때 본 모습 그대로 퇴근하는 저를 맞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남편의 자존심을 다칠까봐 뭐라 말도 못하고 혼자 속 끓이던 때,

시어머님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집이 아닌 회사 근처에서 저를 기다리시던 어머님은, 아니나 다를까, 남편의 실직을 알고 계셨습니다.

평소의 투박하신 표현법대로, 어머님은 저에게 딱 한 마디를 하시더군요.

내가 미안타! 눈물도 한숨도 없으셨지만, 그 말 한마디가 참 아프게 들렸습니다.

어머님이 무슨 죄로 며느리에게 그런 말씀을 하셔야 하는지.....

 

그런데 그보다 더 죄송한 말씀은 그 뒤에 이어졌습니다.

앞으로 내가 너희 생활비를 보태줄 테니, 지나치게 허리띠 졸라매고 속 끓이지는 말라시는 겁니다.

그 말씀에 저는 무어라 대답을 못 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눈물이 핑 돌게 고마운 말씀이시지만, 그 도움을 정말 받아도 되는 것인지...

혼자서 그만한 재산을 일구시느라 그동안 얼마나 눈물겹게 검약하며 살아오셨는지 아니까요.

그러나 어머님은 제 대답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대신 내가 너한테 당부할 게 있다.

첫째, 이 일로 남편 자존심 상하게는 하지 마라.

둘째, 그렇다고 그 애를 마냥 놔둬서도 안 된다. 그 애는 천성이 게을러서, 누가 간섭 안 하면 평생 놀고 먹을 위인이다.

그러니 네가 옆에서 영리하게 자극해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부금슬이 안 나빠지도록 노력해라.

이럴 때일수록 여행도 가고, 데이트도 해라. 부부사이 나빠지면, 다 잃는 거다.

 

저는 그 날 정말 많은 걸 깨닫고 느꼈습니다.

어머니라는 이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요.

자식의 못난 점, 자식에게 닥친 불운, 얄팍한 자존심까지 살피고 거두어야 한다니...

또한 어머님이 제게 내주신 숙제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남편을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책임감과 의욕을 잃지 않도록 자극하라시니 말입니다.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의 마음이 아니고서야 그런 인내와 지혜를 발휘할 수 있을까요?

가장 고마웠던 건 어머님의 마지막 말씀이었습니다.

부부사이가 나빠지면, 다 잃는 거다.

그건 정말 여자 대 여자로서, 인생선배로서 저한테 해주시는 말씀인 듯 했습니다.

 

그 날 이후, 저는 남편을 남편으로 보지 않고, 다 큰 아들로 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보다 더 밝게 웃고, 더 가까이 다가앉으려고 노력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역시 엄마가 아닌 아내인 모양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남편의 속편한 모습을 봐넘기기기 힘듭니다.

남편은, 요즘 주로 서점과 영화관 공연장 등에서 시간을 보내는 듯 합니다.

혼자 노는 법을 완전히 터득한 듯 해요.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초조감이 전혀 안 보여요.

그래서 참다 참다 뭐라고 한마디 하면, 남편은 더 기막힌 말로 저를 실망시킵니다.


 

나도 숨좀 쉬자. 내가 돈 버는 기계니? 돈은 엄마가 준다며. 부족하면 더 달라고 해.”


 

화가 나다 못해 슬퍼지려 합니다.

저런 아들을 위해, 고민하고, 돈 부치고, 기도하는 어머니가 안 됐습니다.

지금 남편에게 필요한 건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이 아니라, 통렬한 현실감각입니다.

바닥까지 떨어져봐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어머님의 도움도 거절하고, 저도 사표를 던져버리는 게 어떨까요?

자꾸 도와주고, 참아주려 하지 말고, 같이 바닥까지 굴러 떨어져주는 게 지금 필요한 아내의 내조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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