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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이면 감천이라......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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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s****
2017-02-16
조회 15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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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감래. 유종의 미. 지성이면 감천...

그런 아름답고 훌륭한 말들이 때로는 우리의 마음을 옥죌 때가 있습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라고들 말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과거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그런 말을 쓰기도 하지요.

모진 세월을 건너 달콤한 열매를 거둔다 해도, 이미 그 맛을 느낄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있다면 무슨 소용일까요?

오늘의 손님이 던지는 질문입니다.

 

저한테는 꼭 언니 같은 이모가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여대생이었던 막내 이모가 저와 같은 방을 쓰며 학교를 다녔거든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이모의 립스틱을 몰래 발라보거나, 이모의 팝송테잎을 훔쳐 듣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미소가 떠오릅니다. 그런데 그 이모가 벌써 환갑이 가깝고, 이모의 딸이 그 때의 이모나이를 지나버렸다니 참으로 세월이 무상하네요.

 

실은 얼마 전, 그 아이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찌나 감격스럽던지요.

꼬물꼬물한 아기를 이모에게서 받아 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뿌듯하고도 아련한 마음에 눈가가 촉촉해지더군요.

저는 딸이 없지만, 딸 시집 보내는 엄마의 마음이 이런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주제넘은 짐작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며칠 전 이모를 만나 들은 얘기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었습니다.

딸을 여의는 감상에 젖을 새도 없이,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신경 쓸 일이 많았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상견례며, 날 잡는 일부터, 예단품목까지 행여 예비사돈의 심기를 거스를까 두 번 세 번 고심해놓고도,

지나고 보면 마음에 걸리는 일이 많았다고요.

이모의 한숨이 하도 무거워서, 제가 한 마디 툭 던졌습니다.

요즘 같이 실속 제일의 세상에 무슨 대단한 혼사라고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아?

그러자 이모가 목소리를 낮춰 대답합니다.

시어머니자리가 보통이 아니셔, 까다로우시고 직설적이시고...”

이모는 고개를 절레 절레 젓고는 한 마디 더 붙이더군요.

꼭 너희 시어머니 예전 모습 같으셔. 그럼 말 다 했지?”

 

이모의 말에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잠시 잊고 있던 나의 시어머님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십수 년 전, 결혼준비 과정에서 온 집안을 몇 번이나 뒤집어놓았던, 우리 시어머니의 어록, ‘사건들

한순간에 되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제 친정식구들 사이에서는 별나고 엄한 시어머니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는 나의 시어머니.

지금 그런 대단한 시어머니 밑으로, 조카가 시집을 가는 거라고, 이모는 말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모도 고민했었다고 합니다.

공부밖에 모르고 자란 딸아이가 유별난 시어머니를 견뎌낼 수 있을까?

이제라도 그만 두는 것이 딸의 행복을 지키는 길이 아닐까?

하지만 학창시절부터 사귀어온 두 아이의 정이 너무 깊었고, 예비 사위가 그냥 놓치기엔 아까운 청년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결혼을 시키기로 결정했고, 그 뒤로는 매사를 좋은 쪽으로 보려고 노력중이라는 겁니다.

이모는 밝게 웃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린 네 얘기를 많이 해. 그렇게 대단한 시어머니도 결국 너한테는 넘어오셨잖니?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결국엔 알아주시잖아.

  지금 얼마나 좋으니. 아들 둘 낳고 부잣집 맏며느리로 인정받고 사니까. 안 그러니?”

 

저의 의견을 묻는 것인지, 혼잣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게 이모는 말끝을 흐렸습니다.

저 역시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그 자리에서는 고개만 연신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의 제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그 말에 저는 왜 한숨이 나올까요?

제가 겪어온 아픈 시간을 그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도 있군요.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저는 어머님께 정성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건 아닙니다.

버티기 위해 발버둥쳤을 뿐이지요.

 

애초에 저를 며느리로 탐탁지 않게 여기셨고, 어떻게든 포기하게 하시려고 갖은 무리수를 다 두시던 어머니는

결혼 이후로도 십년 동안은 며느리를 마음으로 인정 하지 않으시고, 이런 저런 시험대에 올려보곤 하셨지요.

친정식구들의 눈에는 제가 참 비위도 좋게, 꿋꿋이 잘 견뎌내는 걸로 보였겠지만,

속으로는 이혼에 이민까지 별별 생각을 다 했었습니다.

하지만 친정 부모님 때문에, 아이들 때문에 끝내 결행을 하지 못했지요.

그래도 그 세월 동안 제 할 일은 다 했습니다.

어머님이 틀리고 내가 맞다는 걸 증명할 길은 그것밖에 없었으니까요.

정성이 아니라 오기로 했지요. 그런 오기라도 한 가닥 붙잡고 저는 견뎌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어머님은 날로 연로해지시고, 호랑이 같던 기운도 다 빠지시더군요.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저를 시험하지 않으시고, ‘그래도 기본은 돼 있는 아이로 인정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그야말로 옛말 하며 살지요.

팔을 끼고 다니다가 누가 물으면, 딸인지 며느린지 한번 맞혀보라고 대답하시는 어머님을 보며 저는 만감이 교차합니다.

 

이모 말처럼, 어머님은 저한테 넘어오셨나 봅니다.

아들에 대한 지나친 사랑이 문제였을 뿐, 본성이 나쁜 분은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제 사촌동생도 아마 그런 분을 시모로 만난 것 같습니다.

저처럼 십년 고생하면 좋은 결실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제 진짜 마음을 이야기하라면, 저는 그 결혼을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결과가 좋으면 뭐합니까?

제 몸에는 이런저런 병이 깃들었습니다.

근섬유증에, 스트레스성 부정맥...

사랑하던 남편과도, 마음의 거리가 생겼습니다.

당신 때문에 내가 이렇게 산다는 오랜 원망이 사라지지를 않습니다.

아무리 본성이 좋은 사람들끼리라도, 서로를 미워하며 산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닙니다.

나중에 서로를 인정하면 뭐합니까?

여전히 목소리만 들어도 흠칫 놀랄 때가 있는데요.

 

용기를 내어 사랑을 택하는 동생에게는 앞으로 좋은 일만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 애가 진짜 내 딸이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할 겁니다.

더구나 나를 보고 내 뒤를 따라 걷는다면, 저는 말리고 싶네요.

결과도 중요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도 너의 인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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